가슴 뜨거운 역사를 품고 錦江은 내일로 흐른다

1.모반을 꿈꾸다

18일 오전 8시30분. 좀더 서두르면 오후에 쏟아질 비는 피할 수 있으리라. 전북 장수읍 수분리 수분마을회관 앞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앞뒷바퀴를 장착해 체인을 걸고 브레이크를 연결했다. 곧바로 자전거를 끌고 신무산(神舞山·896m) 중턱에 위치한 뜬봉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장기레이스가 아니던가.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1㎞ 남짓 오르자 좌측 등산로 입구에 ‘뜬봉샘 0.8㎞’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숨이 헉헉 차올랐다.

20여분 정도 기어오른 끝에 뜬봉샘에 다다랐다. 높이 2m는 됨직한 ‘뜬봉샘’ 표지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표지석 좌측에 금강의 시원(始原)인 둥그런 샘이 누워있었다. 출산을 앞둔 산모의 복부처럼 평안한 자태였다. 샘에서 탯줄처럼 이어진 수로를 따라 생명수가 조금씩 신무산 아래로 흘러내렸다. 심장 박동인양 금강의 대장정이 이 샘에서 쉼 없이 분출됐다. 뜸봉샘의 물을 자전거에 뿌렸다. 이제부터 자전거, 금강은 한 핏줄이다.

몇년전까지 이곳은 철제 표지판으로 ‘뜸봉샘’이라고 표기됐었다. ‘뜸봉샘’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 ‘뜸’을 놓았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요즘은 ‘봉황이 비상한다’는 의미의 ‘뜬봉샘’(飛鳳泉)으로 되살렸다.

뜬봉샘을 품은 수분리(水分里)는 말 그대로 물이 갈라지는 곳이다. 수분고개에 떨어진 빗물은 북쪽으로는 금강, 반대편으론 섬진강의 발원(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이 된다. 이때문인지 수분마을은 ‘물뿌랭이 마을’로도 알려져있다. 사투리인 ‘뿌랭이’는 ‘뿌리’, ‘근원’이라는 뜻이다.

뜬봉샘에 서서 자전거 투어가 무사히 끝나길 기원하는 간단한 제를 올리고 하산했다. 당초 자전거투어의 출발점을 수분마을회관으로 잡았으나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나타났다. 마을 앞 편도 1차선 19번 도로는 인근 대형 공사장으로 인해 수시로 덤프트럭이 질주했다. 정상적인 자전거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금강자전거 투어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 번째는 무사귀환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감을 총동원해 전진해야 할 도로 상황과 추월하는 차량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해야 한다. 두 번째는 안전한 레이스를 전제로 하되 남(자동차)의 힘의 빌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오후 5시 이전에 레이스를 끝내는 것이다. 야간 운행은 절대 금물이다. 갈등 끝에 첫 출발점을 공사장을 지나쳐 금강물줄기가 목격되는 장수읍내 13번국도상으로 정했다. 아쉽지만 예정된 코스를 7㎞정도 건너뛴 셈이다.

의암 논개사당과 이경해열사 묘지를 지나 13번 국도로 갈아타고 선창을 지나치자 금강 물줄기가 처음 목격됐다. 출발지점이다. 사진기자의 차를 세워 다시 자전거를 조립했다. 자전거에 올라 심호흡을 크게 하고 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발끝에서 발원된 전율이 머리끝으로 올라왔다. 벅찬 희열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큰 뜻을 세우기 위해 뜬봉샘에 올랐던 이성계의 마음도 이랬을까.

비단처럼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금강(錦江)은 그 깊은 수면 아래로 모반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중 8조는 차령산맥 이남 금강 바깥은 산 모양과 지세, 인심이 좋지 않다고 평했다. 그 아래 지역 사람이 왕비나 왕실의 친척과 혼인하고 정권을 잡으면 변란을 일으키고 후삼국 통합 때의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다고 경계했다. 8조는 후삼국 항쟁 과정에서 가장 끈질기게 저항한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앙금 때문에 나온 정치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금강은 풍수지리설에서 물줄기가 개경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는 형상이어서 반란의 땅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활궁(弓)모양은 낙동강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어차피 승리자의 것이던가. 만일 견훤이 정권을 잡았다면 금강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설이긴 해도 이성계가 뜬봉샘에서 모반의 계시를 받은 것도 금강의 신기(神氣)와 무관치 않다. 조선건국 이후 600여년이 흐른 지금 금강은 또 한번 국운 융성의 중심에 섰다. 금강의 꼭지점인 공주·연기지역에 신행정수도의 태반이 들어서려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북진하는 금강을 따라가면서 ‘즐거운 모반’을 꿈꿔야 할 듯싶다. <金衡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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