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기행 - 예산 삼베길쌈마을

장마가 끝나면서 30도를 넘는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쉴새없이 흘러내려 입고 있는 옷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다.

참기 힘든 짜증스런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다보니 시원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모시나 삼베로 짠 옷이었다.

모시와 삼베는 몸에 잘 달라붙지 않고 옷감의 조직이 넓어 그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모시는 귀족 등 양반들의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됐고 서민들은 주로 삼베로 직접 옷을 짜 입었다.

시골마을 집집마다 삼베틀이 놓여 있던 것도 스스로 옷을 지어 입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삼베길쌈마을(sambea.go2vil.org)은 삼베를 짜는 베틀과 길쌈소리로 밤이 깊어가는 전통마을이다.

예산의 오지인 이곳은 별빛이 유난히 맑아 ‘소태’라고 불리던 전형적인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마을 전체에는 국화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꽃이 피면 그윽한 국화향기가 온 마을을 휘감는다.

마을 전체가 40가구도 안되는 이곳은 수십년째 부녀자들이 베틀에 앉아 직접 삼베를 짜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삼베를 만드는 모든 과정은 예전방식 그대로를 고수한다.

750여평의 삼밭에서 6월중순쯤 수확한 삼을 거대한 삼솥에 넣고 장작불로 삶은 뒤 껍질을 벗겨 집집마다 잘 말린다.

말린 삼껍질은 가늘게 쪼개 가닥을 내고 삼을 삼아 실의 형태로 말아낸 뒤 물레로 돌려 실을 이어내 꾸리(실을 감은 뭉치)를 만들고 돌꼇(실을 감고 풀고 하는 데 쓰는 기구)을 돌려 원하는 굵기로 실을 감아낸다. 마지막으로 북집에 꾸리를 넣고 베틀에서 삼베를 짜면 된다.

이처럼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삼베를 짜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품질 하나는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제품도 수의에서부터 이불, 말린 국화꽃잎을 넣어 만든 베개 등 다양하다.

삼베길쌈마을에서는 삼베를 짜는 모든 과정을 보고 배울 뿐만 아니라 한적한 시골을 느낄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골 할머니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길쌈을 하고 베틀에 앉아 어설프지만 북을 던져보고 올을 다져주는 틀을 잡아당겨 보며 전통을 몸에 익힌다.

베짜기가 끝나면 직조된 천연염료를 사용해 삼베에 직접 물을 들여 보기도 하고 천연향제를 이용한 향기 나는 초와 싸리로 통발도 만들어 본다.

삼을 삶기 위해 지펴놓은 장작불에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등을 구워 먹은 후 검게 그을린 입주변을 서로 쳐다보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식이나 쑥개떡, 인절미 등 전통 음식도 만들어 먹고 밭에 심어져 있는 옥수수나 고구마, 콩, 나물 등을 수확하며 자연스럽게 농촌을 접한다.

싸리로 엮은 통발로 물고기를 잡아보는 재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쏠쏠함이다.

서당체험에서는 훈장 어른께 천자문과 기본예절을 배워 아이들에게 예의와 효를 익히도록 한다.

이밖에 장담그기, 국화주 담그기, 조청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가족들 간에 정을 나누며 전통도 익히고 농촌의 넉넉한 인심도 느낄 수 있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함께 전통과 질박한 시골의 정취를 접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삼복더위에 지친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 더없이 뜻깊은 여름나기가 되지 않을런지.<尹汝一 ·李錫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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