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루오展을 두번 보며

2006-08-02기사 편집 2006-08-01 15:43:19     

대전일보 > 오피니언 > 기고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오랜만에 여고 동창생들이 대전을 방문했다. 며칠 전부터 어떻게 친구들을 즐겁게 해줄까 생각하다 보니 루오展이 떠올랐고 여고 동창들의 회동에 매우 그럴듯한 일정인 것 같아 미소가 저절로 머금어졌다.

여고시절 단체관람을 하던 생각까지 더해 신나게 미술관에 도착한 우리를 더욱 즐겁게 만든 것은 교사들을 위한 관람료 할인 특전이었다. 돈을 적게 내는 것도 좋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아 기뻤다. 교육자라면 전공 지식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의 공통 과제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면 이를 주도할 후학을 제대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육자들이 많은 것을 경험하여 보다 풍부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빌딩을 세우고 도로를 잘 닦는 것 못지않게 자자손손 이어질 인적 자원 양성에 지원해야 한다.

지난번 루오展을 관람하고 가졌던 꺼림칙한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필자는 2주 전쯤 일차 이 전람회를 보러 갔었다. 혹시 단체 관람하는 학생들과 섞일까봐 일부러 시간을 골라 11시에 왔는데, 아뿔싸 유치원생들과 딱 겹쳤다. 한 전시실에서 병아리 떼와 같은 한 무리의 꼬마들을 먼저 보내느라 잠시 기다리면 또 다른 무리가 오기를 반복하며 무슨 감상을 했는지 모를 판이었다. 조용하고 느긋하게 관람하려고 애써 시간을 골라온 입장에서는 짜증이 났다. 조기 교육도 좋지만 이건 심하다 싶었다. 그래도 미술관에 오면 조용해야 한다고 어지간히 교육을 받기는 한 것 같았다. 저희들끼리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쉿” 소리를 내가며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 잡은 손에 딸려가듯이 가는 어린이들. 단체를 이끌기 위해 목청을 높일 수밖에 없는 봉사자들. 정신이 벙벙한 채 1시간여 관람을 마치고 지하 전시실에서 열리는 어느 사제의 작품을 보며 그 허망함을 채웠던 기억이 새로웠다.

교실 밖 학습, 체험학습도 학교수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므로 당연히 어릴 때부터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참고 견딜 수는 없지 않겠는가. 20년 전 미국 시카고의 미술관에 1주일마다 드나들며 잘 사는 나라를, 합리적인 운영체제를 부러워했던 생각이 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일주일에 하루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학생들이나 필자처럼 나름대로 스케줄에 따라 자주 가는 사람은 이날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단체 관람하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야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무료라는 점에서 이날의 관람객들이 감내해야 할 조건으로 양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와야 할 텐데. 예술 감상도 우아하게 할 수 있고, 학생들의 교육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날이.

루오展의 두 번째 관람을 끝내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단히 훌륭한 규모의 전람회에 우선 놀랐고, 친절히 안내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챙겨주는 섬세한 운영과 봉사에 기뻤으며, 평생 열정을 바친 루오의 작품성에 감동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릿광대나 창부의 모습을 통해 어둡고 무거운 슬픔을 그리다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성인(聖人)의 모습을 그려내는 루오의 표현은 이 시대의 구원이다. 어려움을 견뎌내고, 좌절을 딛고 일어나고, 고치고 또 고치는 끝없는 작업으로 점철된 작가의 일생이 연작 그림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가난한 젊은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열심히 가르치고 후원하며 영혼의 자유를 지키는 채 꿈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 시대는 열렸다고 하는데도 더욱 굳어지는 것 같은 계층 간의 차이가 새삼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자. 예술가들은 각자 자질을 발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 그리고 돈이나 어쭙잖은 명예로부터 영혼을 지키자. 정부나 지자체는 문화 예술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자. 그리고 대중들은 문화 예술행사 관람에 기꺼이 주머니를 열자. 임숙빈<을지의과대 간호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