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서 속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 협상이 파행 속에 막을 내렸다. 미국 측은 건강보험 약값책정 적정화방안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판을 깨 버렸다. 마지막 날인 14일은 아예 일정 모두를 취소해 버렸다. 앞으로 있을 농업, 섬유, 자동차 등에서의 험로가 예상된다. 이번에 미국 측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과는 달리 한국은 그렇질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대규모 노동●시민단체의 격렬한 길거리 시위는 시작 전부터 우리 협상단을 당혹케 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너무 컸고 과격했다. 그러나 협상초반이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느 협상이든 초반에는 기(氣)싸움, 또는 샅바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의 기선제압을 위해 강수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주장을 강력히 나타내는 것은 작전상 있는 일로서 부정적으로만 볼게 아니다.

정치적 이유 반대에 문제 있다

이번 2차 협상에서 한국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은 찬반양론으로 갈린 국론분열과 정부의 준비부족이다. 물론 어느 사안이든 찬성과 반대가 있게 마련이다. 농민과 영화인 등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협상을 반대한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졸속반대파는 정부의 엉성한 준비 자세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로서 정부가 적절히 대응하고 설득했다면 이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FTA에 반대하는 집회자의 대부분이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가 많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반대주도세력 중에는 시장개방으로 수출이 늘어나 득 볼 것이 예상되는 제조업 종사의 민주노총까지 있었다. 이에 더해 반미 성향을 가진 시민단체까지 반대시위에 나서 협상을 방해했다. 또 정부 내 일부인사들이 공공연히 반대의사를 표명해 협상에 재를 뿌렸다. 피해자의 FTA반대는 당연하나 정치적 반대는 문제였다.

한국과 미국 간에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맺으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다. FTA를 체결함으로써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자원부국이 아니다. 경제의 70%를 통상에 의존하고 있다. 오로지 무역에 의지해 먹고 사는 나라인 것이다. 현재 세계 11위의 교역국이지만 경쟁력유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인도 등 후발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2004년의 4.4년에서 2005년에는 3.8년으로 좁혀졌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1-2년으로 줄어들고 10년 후에는 중국에 따라 잡힐 것으로 내다봤다. 점차 위축되는 성장잠재력을 되살리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미 FTA가 필요악(必要惡)이다. 국민총생산(GDP)규모가 한국의 17배에 이르는 거대시장 미국에 들어가 한판 붙어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민설득과 합의가 전제돼야

미국도 한미FTA에서 얻는 게 있다. FTA로 자동차 의약품 농업 금융 등에서 시장이 늘어나게 됨은 물론 2002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투자대상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도 숨어 있다. 그렇다고 일부 반대론자들의 말처럼 이번 한미FTA협상이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어디까지나 개혁과 개방이라는 정책방향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미국을 설득해 만든 작품’이라고 밝혔다.

FTA는 서로 시장을 여는 것이므로 일부분야에서 손해를 보는 게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설득하느냐가 중요하다. 한미FTA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충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국민적지지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한미FTA의 성사는 어렵다. 국회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적극 나서야 한다. ‘문 닫고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이해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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