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인 유종원의 ‘정원사(庭園師)의 낙타전(傳)’이란 글이 있다. 낙타처럼 허리가 휜 뛰어난 정원사의 얘기다. 그의 손이 닿는 나무는 늘 잘 자랐다. 비결을 물으면 그는 ‘나무를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뿐이다. “따로 재주가 있겠습니까. 그저 나무의 본성을 존중할 뿐 이지요”. 그리고 덧붙인다.

“나무는 본래 곧게 자라려고 합니다. 뿌리는 단단하게 땅속에 박히려하지요. 정성을 다해 나무를 심은 뒤 본성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둘 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툭하면 흙 갈이를 하고, 나무를 살피겠다고 수시로 흔들어 댑니다. 아낀다며 괴롭히는 거지요”

-백성을 편하게 하는 정치.

정치 민심도 이와 흡사하다고 조언한다. “백성도 나무와 같아요. 백성은 그냥 두면 스스로 잘 합니다. 나라가 귀찮게 하지 않을때 백성은 편해집니다”하고 말한다.

그는 “마을의 관(官)나리들은 공연히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일을 즐깁니다. 마음을 써주는 것이야 고맙지만 결국 화만 돋울 뿐이지요.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는데 나라에서 툭하면 참견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씨를 빨리 뿌려라, 추수 때를 놓치지 마라, 가축에 먹이를 잘 주라, 심지어 자식을 소중히 하라느니 잔소리 뿐 입니다. 그걸 보고 우매한 백성은 고마워 굽신댑니다. 이러니 어찌 백성들이 나라를 믿고 편히 일하겠습니까”

제 17대 하반기 국회 개원과 내달 초 민선 자치 4기 출범을 앞둔 지금, 이 고사가 새롭게 들리는 것은 우리 정치 수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민심이반과 불신의 늪에 빠진 지 오래고, 민의를 헤아리지 못한 채, 네 탓 타령이거나 국민의 이해부족으로 전가하는 후진 정치의 겉 껍질에 갖힌 부끄러움에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열이면 일곱, 여덟 명이 정치를 불신하고 있다. 매우 심각한 일이다. 모든 책임은 여야 정치인에게 있다.개혁이다, 뭐다해서 요란했지 헛 발질과 리더십이 빈약한데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는 현란한 허언(虛言)들이 반복되다 보니 자업자득인 꼴이다.

그중 여권에 대한 등돌림은 예상을 훨씬 넘는다. 임기가 1년 반이상 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20%안팎, 여당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했다. 오죽하면 이런 기류에 힘입어 상대 야당의 지지율이 50%대로 오를까.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도 같은 맥락이다. 집권 3년의 평가라는 이 선거에서 여당은 16개의 광역 단체장 중 1석, 230개의 기초 단체장중 겨우 19석에 그쳤다.지방의원 성적도 참담하다. 이 레드카드는 충청권만이 아닌 전국적 현상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에서 선거 민심을 보는 시각과 민심수습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물론 참패후 충격요법을 쓰지 않았다. 특유의 발상도 없었다. 나돌던 당적이탈문제도, 정계개편론도, 그리고 개헌론도 없었다.

-5.31선거민심수습이 해법.

오히려 패인에 대해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에서 ‘한두번 선거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정당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나아가 2002년 대선당시 ‘마지막 20일전까지 헤맸지만 대통령이 됐다’며 민심은 언제든 바뀔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저항없는 개혁은 없다’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김근태의장이 지휘하는 여당은 서민 중심 경제등 안이한 정책의 궤도수정을 꾀하며 청와대와 차별화하지만 신통치 않다.

이런 여권의 엇갈린 분석과 혼선은 선거에서 드러났듯 빈부격차와, 진보대 보수의 갈등,기득권과 비주류간,세대간,지역간의 대립에다 일자리창출, 남북긴장과 사회 편가름현상,부동산가격폭등,교육문제등 꼬여가는 정책을 어떻게 풀지 답답하다.

야당도 문제다. 공수는 언제든 바뀐다. 여권의 실책으로 톡톡히 재미 본 야당도 아우성인 민심을 경청하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해야 옳다. 집권당,집권 세력에만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다.더욱이 이번 결과를 놓고 천하를 다 얻은 듯이 착각, 논공행상에 빠진 소리(小利)는 당장 집어치워라.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게 민심이니까.여야 정치권의 뼈아픈 자기반성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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