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항일상소 주도… 내년완공

구한말 항일상소 투쟁을 주도했던 수당 이남규선생(1855-1907) 기념관이 충남 예산군에 건립된다. 충남도는 최근 수당선생의 고택이 위치한 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주변에 선생의 충효정신을 계승·학습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기념관은 2007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며 지상 1층의 한식목구조 양식으로 갖출 예정이다. 사업비는 총 12억원(국비 7억5000만원, 도비 2억2500만원, 군비 2억2500만원)이 지원된다.

기념관은 수당선생 생애와 학맥도, 홍주의병, 선생의 최후 등 주요 내용 이외에도 이충구, 이승복 등으로 이어진 항일 독립운동, 한국 전쟁에서 순직한 4대 이장원 등 4대 국가 유공자를 배출한 선생 가문 전반을 소개한다. 또 수당선생의 어록을 전시한 추모공간, 수당선생의 고택 구조와 특성, 영상실 등으로 구성된다. 사료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수당 고택의 방대한 분량의 고문서도 이곳에 전시된다.

수당선생은 1855년 서울 미동에서 출생한 뒤 기호유림의 대표학자 성재 허전 문하에서 수학했고 1875년 향시인 사마시 양과, 1882년 정시 문과에 급제, 승정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됐다. 승정원동부승지 우승지 현조참 등의 요직을 거친 선생은 김택영, 황현, 이건창과 함께 구한말 4대 명문장가로 꼽혔다. 특히 선생은 1883-1905년 명성황후 시행만행을 규탄하는 ‘청절왜소’를 비롯 을사조약 체결 당시 결전을 주장한 ‘청토적소’ 등의 상소를 잇따라 작성, 항일유림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선생은 단발령에 반발, 관직을 사퇴하고 예산에 칩거하던 중 충남 홍산(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을 숨겨줘 일제에 의해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선생은 1907년 일제의 회유를 거부, 충남 아산군에서 장남 충구와 함께 살해됐다. 특히 수당이 왜병에게 붙잡혀 연행될 당시 “선비는 죽일 수 있으나 욕보일 수 없다”고 호통을 친 일화가 전해졌고 이는 유생들의 항일투쟁정신을 고취시키는 자극제가 됐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으며 1997년 기념비가 세워졌다.<南尙賢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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