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해 봐야 뭣하나. 그 x이 그 x인걸. 선거 끝나고 나면 쳐 다도 안 보는 x들이지” 5.31지방선거가 13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기 만하다. 길거리에서 후보자 명함을 나눠줘도 대부분 표정이 없다. 어떤 유권자들은 손을 내 저으며 명함조차 안 받는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누가 돼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래선지 자기 지역에 누가 출마하는지 조차 관심이 없다. 지난 선거 때보다 더 썰렁한 모습이다.

유권자 냉랭, 월드컵 관심 쏠려

오직 선거현장을 누비고 있는 출마자나 관계자만 바쁠 뿐이다. 이러다간 2002 지방선거 때의 투표율 48.8%에도 못 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자치 시행 첫해인 95년에는 68.4%, 98년에는 52.7%로 투표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건 크나 큰 문제다. 50%이하의 투표율은 사실상 선거의 의미가 없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된다면 출범 11년의 풀뿌리 민주정치제도의 정착은 요원하고, 본질마저 심한 도전을 받게 된다.

자기 지역의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 등을 자기 손으로 뽑는 흥겨운 행사가 어찌하여 외면당하고 있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첫째 이유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정당에 있다. 막강한 공천권을 가진 정당들은 공천과정의 투명성을 지키지 못했다. 잇단 돈 공천파문과 밀실야합, 낙하산, 사천(私薦)등으로 빚어진 정치권의 온갖 추악한 모습은 유권자들의 외면을 부추겨 왔다.

그 다음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 폭로전이 무차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약이나 정책대결은 간 데 없고 상호 고발과 성명전만 난무하니 유권자가 식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이나 공약대결이 아닌 엉뚱한 이미지경쟁의 서울시장 선거나 후보 간 막말●진흙탕싸움의 대전시장 선거전이 대표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열기가 5.31지방선거에 찬물을 끼얹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지난주 한국축구대표팀을 비롯 각국이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를 확정하면서 월드컵 붐이 일고 있다. 차두리가 빠지고 송종국이 들어간데 대한 화제가 만발했을 정도다. 월드컵 축제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도 월드컵 행사응원을 위한 꼭짓점댄스가 유행 하는 등 월드컵바람이 거세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한국이 과연 16강, 아니 8강 이상 오를지에 내기를 거는 등 월드컵열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마지막으로 선거결과가 뻔하다는 인식도 유권자를 외면케 하는 요소다. 이번 선거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를 증명한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2-3개를 제외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의 대전 등은 이미 대세가 결정 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시일이 있어 변수가 있지만, 현재 선두가 2위권을 2-3배차로 앞서 역전이 어렵다. 이번선거에서도 망국적 지역주의가 살아 있음은 큰 문제다.

한강●금강에 잘린 손가락 없게

지방자치 정착을 위해선 투표를 꼭 해야 한다. 시장●도지사●군수와 구청장●지방의원은 주민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찌 보면 대선이나 총선보다 더 중요한 게 지방선거다. 우수한 단체장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왔음을 우리는 몇몇 자치단체의 예에서 본다. 반면 무능하고 부패한 자치단체장이 살림을 망치고 교도소로 가는 것을 수 없이 보아 왔다. 투표를 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사람을 잘못 뽑아 후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오죽하면 도장을 잘못 찍은 유권자가 손가락을 잘라 강에 버려 둥둥 떠다닌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왔을까. 이번에는 한강, 낙동강, 금강에 잘려진 손가락이 떠다니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후보자의 프로필이나 소신●공약, 아니면 후보자명함이라도 살펴보고 후회 없는 투표를 하자. 정치권력은 국민수준과 같다고 한다. 유권자의 깨어있는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