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선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약하다.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 뒤지고 경제력에선 카르타고인보다 떨어진다. 로마인들 스스로 인정했으면서도 그들은 어떻게 1천 수 백 년 간 영광을 누렸을까. 이탈리아의 작은 반도 국가에서 시작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로마가 광대한 영역을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법과 제도 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로마 융성의 비결은 열린 사고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융성요인을 또 다른 측면에서도 해석하고 있다. 피정복민의 장점을 취하는 그들의 열린 사고와 관용주의가 대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것이다. 로마로 들어오는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정화시킨 ‘호수국가’라 지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여러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화학적 융화를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어떤 문화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미국식으로 재해석해 만든 미국문화로 다시 세계에 전파한다는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프로 풋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가 9박 10일의 한국방문을 끝내고 어제 돌아갔다. 워드의 방한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무엇보다도 혼혈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현실에서 그의 방한을 계기로 혼혈인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워드는 일반인의 눈길밖에 있었던 혼혈인중 한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이 되었고 슈퍼볼에서 MVP가 되어 그의 정체성을 스포츠 스타로 전환시킴으로써 집중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혼혈인이지만 ‘유명해졌기에’ 위대하고 우러러 보이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우리의 부끄러움이 있다. 혼혈인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함께 어우러져 평등하게 살아갈 자격과 권리가 있는데도 비하하며 업신여기지는 않았는지 자성할 일이다. 혼혈인의 존재가치에 그리도 무심했는지 닫혔던 마음을 반성케 한다. 그런 점에서 고루한 생각을 깨뜨린 ‘워드 신드롬’은 우리사회 변화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기에 충분하다.

워드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인종ㆍ다문화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국회에서도 여야는 혼혈인의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법안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혼혈인에 대한 우리의 포용력이 얼마나 발휘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혼혈인이 이 땅에서 맘껏 능력을 발휘하며 생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어느 정도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는 우리가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유별나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 폐쇄적 ‘순혈주의’로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차이나 타운 하나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면서도 한류를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여기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한류를 세계시장에 내다 팔려면 지나친 민족주의부터 벗어나는 게 순리다. 단일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혈통주의 선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인종, 혈통, 민족에 대한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편협 돼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문화 혼합·충돌이 창조의 바탕

우리는 인종과 문화의 단순한 차이를 다양성으로 보지 않는다. 우열의 문제로 보는 버릇까지 있다. 이제는 국민의식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야 한다. 한국에는 3만 5000명의 혼혈인이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통념도 이제는 지켜내기 어렵게 됐다. 다민족 복합문화사회로 가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에서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더 이상 도약할 수 없다. 창의성은 항상 다른 사고방식이 충돌할 때 나타난다. 문화의 혼합과 충돌은 창조의 바탕이다. 워드가 남기고 떠난 교훈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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