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은 제 50회 신문의 날이다. 독립신문 첫 발행(1897년4월7일)을 기념해 지난 57년 제정됐다. 우리의 신문 역사는 불과 110년이 안 되지만, 세계사적으로 볼때 신문은 이미 로마시대에 있었다. BC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가 발간한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가 그 것이다. 로마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Roman Forum)에 중요한 사회●정치적 내용을 족자 형태로 걸어 놓은 게 원시 형태의 첫 신문이다.

종이신문 죽지 않고 進化 가능

카이사르가 원로원에만 갇혀 있던 정보를 과감히 일반시민에 공개한 것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동양에서는 중국 당(唐)나라 때 관아에서 발간된 빠오(報)를 최초신문으로 보고 있다. 근대 신문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 발명이후 태어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 세기를 넘어선 우리 신문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다(多)매체시대를 맞아 인터넷과 방송 등에 크게 위협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업에 종사하는 필자로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곤욕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 신문의 위기는 신문 산업의 위기와 신문매체 위기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신문 산업위기는 메이저 중앙지간 과열경쟁과 지방지의 난립이 빚어지면서 비롯됐다. 무분별한 무가지 발행과 경품증정, 제반여건도 갖추지 않은 채 사업 방패막이로 우후죽순 발행되는 지방지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왜 신문을 읽지 않느냐고 물으면 ‘신문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라고 서슴없이 답한다. 컴퓨터를 켜면 뉴스와 각종 연예 오락 등 재미있는 프로가 홍수를 이룬다. 휴대전화로는 듣고 싶은 음악을 실컷 듣고 게임을 맘껏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 신문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것이다.

종이신문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매체의 장점을 살려 나간다면 죽지 않고 오히려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송과 인터넷에 비할 수 없는 수월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방송은 몰입이 쉬우나 시청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긴 어렵다.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정제되지 않은 의견과 익명의 상대비방, 편견 욕설이 판을 친다. 격조 있는 소통 대신 감정적 배설만 날 뛴다.

신문 많이 봐야 先進富國 된다

신문은 다르다. 신문에선 의도치 않아도 찾아 읽게 되는 유익한 정보가 널려있다. 신문의 사설과 칼럼은 독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게 하고 곰씹어 보게 한다. 다시 말해 사유와 가치의 정보를 가능케 해 독자들에게 판단 능력을 제공해준다. 신문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가 있으니 권력에 대한 비판과 국가의제설정이다. 신문은 ‘읽고’ TV는 ‘시청하고’ 인터넷은 ‘이용 한다’는 의미를 깨닫자.

선진국일수록, 부자나라일수록 신문을 많이 읽고 있음을 보라. 세계신문협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신문발행부수는 1위가 노르웨이로 704.6부, 2위는 일본으로 653.5부, 그 뒤를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가 잇고 있다. 모두가 선진국이요 부자나라다. 우리도 잘 살려면 신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리더스 아 리더스’(Readers are Leaders)란 말이 있다. 의역하자면 많이 읽는 사람이 사회와 국가의 리더가 된다는 말이다.

겨우 200부 수준인 우리나라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입시 논술고사 때문인지 최근 학교에서 신문 활용 교육운동(News In Education)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신문이 독자곁으로 바짝 다가가기 위해선 탐사보도, 심층보도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매일 아침 잉크 냄새 싱싱한 조간신문을 펼치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야 신문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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