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봄을 취재하러 가던 잘 아는 외신기자가 대전에 들렀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생활한지 10년이 넘었으니, 한국인 다 된 그다. 은퇴 후 처가 나라인 한국에 귀화해서 살겠다고 외칠 만큼 우리 문화에 대해 해박하다.

그가 불쑥 던진 말은 다음 정권은 여야 어느 당이 잡겠느냐는 것이다. 한국 야생화에 남다른 취미를 가진 그의 평소답지 않은 물음이다. 글쎄 하고 얼버무리니까 그의 답은 쉬웠다. 역동성(力動性)을 가진 정당이 잡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역동성 키운 후보만이 성공.

왜냐고 묻기도 전에 그의 논리는 이랬다.‘ 2002년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될 줄 알았나?. 이회창씨가 되는 줄 알고 초점을 맞췄는데. 이회창 대세론이 그거 였잖아. 그러나 당시 민주당, 노무현측은 이 대세론을 걷어치웠다. 쟁쟁한 당내 대권 후보 간 경선을 통해 대세론의 거품을 잠재운 게 아니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신나는 전국순회 난타전은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어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해 2,3월,4월까지 주말마다 펼쳐진 감동은 이회창 대세론의 늪에 빠진 한나라당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노사모의 결집, 민주당원들의 바람, 국민에게 신선한 기대를 불러온 게 경선이었고, 결국 ‘노풍(盧風)’으로 이어졌다. 치고받으며 과열과 잡음이 있었지만 그 경선을 통해 역동성과 후보 경쟁력을 만들어 냈다.

5. 31지방선거도 비슷하다. 이미 공천 작업을 시작했거나 준비중인 정당들이 후보 결정을 놓고는 골머리를 앓는다. 대전. 충남북과 전국 곳곳에서 구태도 고개를 든다. 정치 개혁의 싹이라는 후보결정 과정이 밀실이거나 하향식의 비민주적 행태가 다반사다.

과열된 몇 곳에서는 경선이냐, 당 공천이냐를 놓고 파열음도 잦다. 투명한 상향식 공천, 완전 경선이란 선언은 이래저래 한낱 명분이거나, 요식행위로 비쳐진다. 드림팀이다 뭐다 해서 내천설이 극성이고, 낙점을 받기위해 이곳저곳에 줄 대기, 줄 서기와 금품 로비설 등도 난무한다. 동지(同志)라던 한솥밥 식구들끼리 엄포에다, 상대의 흠집을 죄다 까발리며 죽기살기다. 후보가 여럿인 정당은 더하다. 추태도 가지가지다. 이곳저곳서 낙하산공천 조짐에 허탈해하는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불만이 쏟아진다. 여든 야든 입버릇처럼 당원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선언은 허울 일 뿐이다. 정치 개혁을 외칠 때마다 내놓은 게 민심이나 당원의사에 따르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선 흐지 부지다.

당원의 의사를 무시한 몇몇 당 지도부의 후보 결정이나, 밀실공천은 곧 부패정치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향식 공천자체가 소수에 의한 검증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은데다, 당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헌법과 정당법에까지 규정된 정당의 활동 등에 대한 민주성, 자율성이 무력해지는 것은 아직도 3김 정치의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있다고 지적한다.

-경선통한 공천이 개혁의 싹.

물론 상향식 공천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할 경우 당 조직의 분열과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나아가 연고주의가 공고해지거나 신인들이 진입장벽을 허물기는 하향식 공천 때나 마찬 가지일수 있다. 또한 허수당원과 전문성, 자질이 떨어지는 토호들의 폐단도 적잖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렇지만 당원들에 의한 상향식 공천방식은 포기할 수 없다. 이는 당원들에 의한 부분 경선이든 완전 경선이든 아래 의견이 위로 전달되는 민주정치의 시작이다.

1인 보스 중심에서 벗어난 정당 민주화는 당원의 힘으로 이뤄진다. 당원에 의해 선택되고 검증되어야만 경쟁력을 갖춘 후보, 그리고 정책정당이 가능해진다. 참신한 사람 몇몇을 데려온다 해서 정치가 개혁되는 것도 아니다. 전략공천이다 뭐다해서 당원의 권리와 의무를 막아버리면 정치문화의 퇴행을 가져온다. 지금처럼 여야가 충청권등 몇몇 곳곳에서 추진하려는 하향식 공천으로 후보가 결정된다면 역동성은 사라진다. 크게는 바라던 정치개혁도 밀실에 갖히게 되고, 선거문화 역시 뒷걸음칠 게 뻔하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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