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팔이라는 보석이 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이 보석의 매력은 보는 각도나 위치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는데 있다. 왜 그럴까?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은 물체가 빛의 특정 파장(색깔)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오팔은 모래알보다 훨씬 작은 유리구슬이 뭉쳐서 만들어졌는데, 이 유리구슬의 크기가 제각각이다 보니 저마다 반사시키는 빛의 파장(색깔)대가 다른 것이다. 이 미세한 유리구슬을 과학 용어로 ‘광자결정’이라고 한다.

광자결정은 빛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각종 광통신이나 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양승만 교수팀이 최근 제시한 해법이 ‘네이처’에 실리는 등 관심을 끌고 있다. 나노미터 수준의 작은 입자와 마이크로 크기의 큰 입자를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 정도인 지름 50㎛ 정도 크기의 물방울 속에 가뒀다가 물을 서서히 증발시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작은 입자가 큰 입자 사이에 쌓이면서 스스로 규칙적인 결정을 만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단순한 것 같은 이 실험이 네이처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응용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개별 입자는 반도체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이를 실리콘 웨이퍼에 배열시키면 곧바로 나노 트랜지스터로 사용이 가능하고 이 입자를 차곡차곡 쌓을 경우 차세대 광통신 소자 및 초고속 정보처리 능력을 갖춘 광자컴퓨터 개발에 필요한 광자결정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BM은 원자를 직접 움직여서 IBM이라는 글을 씀으로써 분자나 원자를 하나씩 움직여 블록을 쌓는 방식의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원자(분자) 하나하나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스스로 조립하는 원자들의 성질을 이용하려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 양 교수팀이 반도체 나노입자와 절연체 마이크로 입자를 물방울에 가둬 증발시키는 방법으로 규칙적인 구조를 갖는 결정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자기조립방식으로 나노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것이 상용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양 교수의 ‘물방울 증발’ 연구가 주목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자기조립 소재를 나노벽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즉 나노벽돌로 3차원 구조물을 조립하면 소위 다이아몬드 격자구조의 ‘광자결정’을 만들 수 있는데, 이 광자결정의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광자결정은 빛이 정보를 처리하는 차세대의 반도체로 ‘빛의 반도체’라고도 불리는데 벽돌로 건축물을 쌓듯이, 나노입자로 만들어진 결정을 벽돌로 이용해 삼차원 구조물을 만들면 광통신 소자를 만들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빛의 흐름을 제어할 수만 있게 된다면 저장장치의 크기가 전자 하나 크기로 작아지게 돼 초슈퍼울트라급 컴퓨터도 손목시계보다 작은 크기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성능면에서도 현재의 컴퓨터로는 해독하는 데 수백 년 이상 걸리는 암호체계도 이 컴퓨터를 이용하면 불과 4분만에 풀어낼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등에서는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광자의 원격이동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빛을 정지시키거나 저장하고 재생하는 실험들이 잇달아 성공하면서 광자 기반의 ‘빛의 반도체’나 ‘양자컴퓨터’ 개발 전망을 한층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양 교수의 연구결과는 우리나라도 이 경쟁의 한 축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차세대 ‘광자컴퓨터’ 도래가 더욱 기대된다.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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