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강성복 ‘비단고을 별천지에서 핀 산꽃마을…’ 발간

문화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문화재 시선은 역사적 인물의 자취가 서린 것 혹은 대중화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역사 속 예능들에 집착한다. 그 속에는 우리네 현 삶과는 동떨어진 수백 수천 년의 시간장벽이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민속학자 강성복은 이 같은 시각에 반기를 들고 오늘을 사는 시골 오지 고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화의 본질은 화석 같은 유물들보다는 전통과 현대를 이으며 사는 우리네 토속 마을의 생활에 내재돼있다고 생각한 것.

그 같은 사유를 담아 낸 것이 책 ‘비단고을 별천지에서 핀 산꽃마을 산꽃세상’이다. 책은 생활문화로 읽는 마을 이야기를 통해 향토문화 속에 숨겨있는 전설을 들려준다.

서문에 밝힌 그의 문화재에 대한 시선은 이렇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마을은 삶의 터전을 구성하는 최말단 조직인 동시에 지역문화의 든든한 뿌리다. 오랜 세월동안 적층된 문화사의 궤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 속에는 미처 주목하지 못한 놀라운 질서와 지혜가 녹아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그가 얘기하는 세상은 비단고을 금산에 숨어있는 오지마을 보곡산골. 화려한 반촌이나 위인의 자취를 담아오던 기존 마을지를 벗어나 전통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무형의 문화유산들을 찾아 소상히 해설해준다.

보곡산골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 끝자락에 위치한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를 부르는 이름. 서대산 기슭에 자리해 골이 깊고 험준한 고봉준령이 병풍처럼 에워싸 금산에서도 가장 궁벽한 오지로 꼽힌다.

저자는 보곡산골 각 마을 집성촌들의 유래와 둥지를 틀게 된 사연들로 시작된다. 피란지지로 잘 알려진 보곡산골은 한국전쟁 중 빨치산과 국군 사이의 가장 큰 피해지로서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계유정난을 피해 피신 온 전대장 전충노 후손 천안전씨, 또 당파싸움과 임진왜란에 쫓겨 온 효령대군 자손 전주이씨와 해주오씨의 각각의 집성촌 형성 배경을 이야기해준다.

산림보호를 위해 조직된 송계(松契)의 유래도 들려준다. 농토가 귀한 금산 산간마을에서 민초들의 생계와 분묘의 재원이 됐던 소나무 숲을 통해 오늘날 하나의 축제로 자리매김한 연합송계 초장길 행사를 소개한다.

수십 마을의 초군들이 큰 기를 들고 운집해 기세배, 풍물싸움, 농기싸움 등을 벌이며 역동적인 대동놀이와 집단일체감을 고취시킨 송계의 배경을 추적해간다.

특히 신안골 송계, 부리면 갈선산 송계, 진산면 배티재 송계 등을 열거하며 금산이 전국에서 유달리 산림조직이 강한 이유를 광활한 산림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설명한다.

이밖에 구전설화, 가신(家神), 나무꾼들의 옛 놀이, 돌림병을 막기 위한 제 디딜방아뱅이, 섬김과 나눔의 지혜로 이어 온 동제 등을 통해 보곡산골의 전통 속으로 안내한다.

책은 보곡산골의 산천과 지명을 소개한 1부 ‘비둘목재 너머 칠목지간의 피란지지’로 시작해 최근 산꽃축제와 산림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2부 ‘보곡산골에 내린 천혜의 산림과 꽃동산’으로 구성됐다.

또 마지막 3부 ‘더불어 살아온 생활문화의 자취를 찾아서’에서는 민속문화의 전승현장과 구전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朴鄭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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