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7년 당시 청와대가 장기집권을 꾀할 때 공화당 의원 몇몇이 박정희 대통령을 찾았다.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리던 양순직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그의 면전에서 ‘민심은 천심’이라며 ‘장기집권은 안 된다’고 직언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놓고 과욕을 부리다 빚은 권력자들의 비극과 고사(故事)를 예로 들며 집권자를 설득했다. 또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 덕수궁 길을 걸을 때 시민들이 알아보고,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막걸리 잔을 마주하는 그런 대통령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항명과 괘씸죄가 씌워져 당에서 쫓겨 났다. 이렇게 재갈을 물린 채 3선 개헌에 이어 유신헌법을 만들었지만 박 정권은 결국 10·26사태로 막을 내렸다. 훗날 양 의원은 충청 향우모임에서 ‘박 대통령이 서민대통령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퇴장했더라도…’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격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려면

같은 맥락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도 생생하다. 그는 당시 ‘경호원 한두 명과 서울 남대문시장에, 부산 자갈치시장에, 대구동성로에, 광주금남로에, 대전은행동에 나타나는 대통령, 거기서 마주친 시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통령, 그런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그 꿈을 이뤘는지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작년 집권 반환점 무렵, 그는 ‘이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킨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제왕 적 대통령문화의 겉껍데기를 벗겨낸 청와대의 변화에도 흡족해했다. 권력기관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격의 없는 토론문화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25일은 노 대통령이 취임한지 꼭 3년, 집권 4년차에 접어든다. 보기에 따라 ‘벌써 3년?’, 이거나 ‘아직도 2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집권 3년간 잘한 일 못 한 일을 냉철히 평가해, 남은 2년은 미완의 과제를 위해 값지게 써야할 시기다.

최근 이를 평가한 어느 조사에서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열이면 일곱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매우 실망스런 성적표다. 20%대의 지지도인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기대 밖의 성적은 인기 없던 역대 대통령들의 이 무렵 성적표와 엇비슷하다.

그간 3년은 대통령 탄핵, 집권 초 야대(野大)에 따른 잦은 장관해임 파동, 신행정수도법 위헌, 경제 및 민생 불안, 실업자문제, 이라크파병, 북핵 문제 등 복병에 시달렸다. 또한 극한 정쟁은 물론이며 진보와 보수, 친미와 반미, 재벌과 시민, 서울과 지방, 세대간의 갈등과 충돌로 사회 전반적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여기저기서 쓴 소리들도 나온다. 한 세미나에서는 정부가 일하고 싶었어도 방법을 몰랐던 3년이라고 꼬집은 학자도 있었다. 같은 사람을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 ‘코드인사’비판도 쏟아졌다. 편갈림이나 양극화의 책임을 두고 비판하는 이도 수두룩하다.

닫힌 벽 허물어야

여권은 대선자금수사를 통한 정치개혁, 부패척결, 행정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및 지방화정책, 인권과 과거사 정리 등 역사의식을 정립하려는 의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 새로워 진 점 등을 큰 결실로 꼽는다. 그럼에도 정당한 평가 없는 뭇매질에 여권은 아쉬워한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2년은 큰 세상, 미래를 만드는데 주력해야한다. 벽을 허물고, 나와 상반된 이론(異論), 이설(異說)속에 들어가 그들을 참여시켜야 제대로 된다.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지지도에 연연 하거나, 정책 찬반에 일희일비할게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둘러싸인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한다. 잘못 알려진 게 뭔지, 반대편의 사람들은 왜 아우성인지, 그리고 무엇이 마음을 닫게 했는지 헤아려야 옳다.

그래야 강한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유능한 정부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게 참여다. 마음을 열고 대결이 아닌, 편 가름은 더더욱 아닌 일체감을 가질 때 상생과 경쟁력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 벽들을 허물어야 한다. 그 벽, 그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면 허물어진다. 대통령과 국민이 하나가 되는 것은 열린 마음이다.<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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