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노란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쓰인다. 나노는 원래 10억분의 1m를 나타내는 단위다. 나노 단위의 크기를 관찰하고, 조작하는 것이 바로 나노 기술인 것이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왜 이렇게 작은 세계에 열광할까?

나노 단위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과 전혀 다른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나노 세계에서는 에너지를 한층 덜 소모하고 덜 낭비하는 특성을 띤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분자 수준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수술법, 인체 세포보다 작은 컴퓨터, 오염을 줄여주는 미시적인 크기의 초극대 효율의 생산 장비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필심(흑연)으로 다이아몬드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원자(C)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자의 배열이 다를 뿐이다. 만약 연필심의 탄소원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연필심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기술로는 나노 수준에서 소재나 부품을 만드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백지 위에 찍은 나노크기의 검은 점(입자:0차원)이나 입자를 연결한 막대(1차원), 선을 연결한 원(2차원) 등을 만들고, 그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카이스트 조성오 교수팀이 나노입자와 나노막대로 구성된 3차원 형태의 나노나무(nanotree) 또는 나노숲(nano-foreset)을 만들어 내 관심을 끌고 있다.

실리콘이 함유된 폴리머인 PDMS 필름에 방사선의 일종인 전자빔을 쬐었더니 PDMS의 특성이 바뀌면서 줄기와 수천 개의 가지로 구성된 나노나무 또는 나노숲이 필름 위에 대량으로 합성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 교수 연구팀은 나노 입자로만 구성된 나노나무(A형)와 나노 막대로만 구성된 나노나무(B형) 뿐만 아니라, A형과 B형을 혼합하는 것도 자유자재로 제조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더구나 전자빔을 조작하면 줄기와 가지를 다른 종류의 물질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해진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 나노나무 기술을 태양전지, 나노광학소자, 센서, 바이오 및 의료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 용도로도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마디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팀의 연구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생산 비용이 싸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방사선의 일종인 전자빔을 PDMS 필름에 쪼이는 방식으로 나노나무를 만들어 냈다.

전자빔으로 물질을 쪼이면 그 물질이 분해되면서 화학적으로 활성화된 물질들을 발생하게 되는데, 이 활성종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원래물질과 전혀 다른 물질들을 합성하게 된다. 이 합성과정에 전자빔이 가진 음전하와 물질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특정한 형태의 전기장이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새로운 나노구조를 가진 물질이 합성되는 것이다.

조 교수팀은 물질에 쬐는 전자빔의 양과 속도 등을 변화시키면 발생하는 나노구조의 형태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의 조사면적을 수 ㎡ 이상으로 얼마든지 쉽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나노 물질을 넓은 면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초연구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나노 구조 물질 관련기술을 실제 산업적 이용으로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원자로 아이들 블록 쌓기 하듯 할 수 있는 나노기술 시대, 연필심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현대판 연금술이 한국에서 꽃 피기를 기대해 본다.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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