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중장기조세개혁방안이 사회 각층의 거센 비판과 저항에 부딪혀 5·31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것 같다. 국민들은 물론 참여연대와 한국노총, 심지어 여당마저 이번 조세개혁안이 철학도 없고 절차도 잘못됐다며 정면 비판하고 나선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는 ‘국민들이 세금 짜내는 자판기냐’는 등 정부를 성토하는 글로 가득하다. 국민에게 이해절차를 구하지 않은 채 갖가지 증세정책을 내놓은 결과다.

최근 굵직굵직한 조세정책들은 행정부와 국회의 입법조율 없이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흘러 나왔다. 세금과 부동산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각종 정책이 발표되고, 또 하루가 멀다하고 번복돼온 건 사실이다. 특히 맞벌이부부에 대한 소득세축소 방침은 나흘 동안 네 번이나 바뀌었다. 세금문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수백만 국민에게 직접 영향 주는 조세정책이 이렇듯 널뛰듯 해서 되는지 묻고 싶다.

增稅만으론 양극화해소 안돼

세금을 둘러싸고 춤추는 중심엔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지난 1월 18일 신년연설에서 양극화해소를 명분으로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각종 세금인상안이 봇물 터지듯 했다. 서민의 술인 소주세인상과 주식양도차익과세, 장례식장비, 아파트관리비의 부가세 적용 등 세금폭탄이 계속됐다. 지난달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당장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당·정·청의 세금 엇박자는 계속됐다.

앞으로 10년간 354조원이 드는 중장기조세개혁방안은 복지, 통일, 교육 분야에 집중 투자된다. 양극화해소와 사회복지형국가로 가는 인프라구축에 주로 드는 비용이다. 고소득층엔 세금부담을 높이고 저소득층에는 복지지출을 확대할 계획인 것 같다. 하지만 소비세의 경우 저소득층에 불리한 세제임을 알아야 한다. 늘 세수부족을 외치는 정부지만 지난해도 목표보다 6000억원 넘게 세금을 거두었다.

정부는 왜 유럽서 이미 퇴조한 ‘사회복지형 국가’모델에 도전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 富의 재분배를 위해 80%가 넘는 누진소득세법을 폈던 영국이 심한 ‘영국병’을 앓아야했던 예를 알고 있다. 또 복지시설과 복지혜택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스웨덴이 10수년 넘게 제자리걸음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는 증세만으로는 국가발전이 안 됨을 일깨워준다.

물론 양극화를 해소하고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느 사회에서건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5배 이상 수입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말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자본주의국가는 급격한 기술혁명과 세계화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게 마련이다. 문제는 격차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있다.

사회복지형모델 추진 안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상위 20%의 월평균소득은 하위 20%의 7.56배에 달했다. 2003년의 7.23배, 2004년의 7.35배보다 심화됐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소득분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분배)도 2003년 0.341, 2004·2005년 0.31로 양극화가 다소 깊어졌다. 이는 유럽국가들보다 높지만 미국보다는 낮은 수치다.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호하다.

사회양극화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 우리만의 현안도 아니다. 양극화를 增稅로 해결하려해선 안 된다. 증세보다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먼저 해야 한다. 일자리창출을 위해선 감세가 더 효율적이다. 최근 많은 선진국들이 국가경쟁력제고를 위해 조세인하경쟁을 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권오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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