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노년의 아인슈타인에게 기자가 물었다. “박사님, 박사님에게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뜻밖의 질문에 좌중은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죽음이란 내가 모차르트음악을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걸세.”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그가 모차르트를 얼마나 광적으로 좋아했나를 보여주는 일화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연주되는 게 모차르트음악이다. 연주장은 물론 가정과 학교, 사무실 등 세계 어느 곳에서나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광고, 심지어 휴대폰 벨소리까지 모차르트음악은 인기다. 멜로디가 아름답고 쉽기 때문이다. 한때 모차르트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소위 ‘모차르트효과’가 크게 유행한 적도 있다.

‘죽음이란 모차르트 못 듣는 것’

1756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35세를 살면서 626개의 번호 붙은 작품을 비롯 1000여곡을 남겼다. 클래식음악 거의 전 장르에 걸친 작품들이다. 당시 그의 음악은 혁신적이고 독창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오션’적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이 외로운 천재는 끝내 가난 속에 젊은 나이로 죽어야만 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는 동부알프스에 위치한 면적 8만3800㎢, 인구 800만을 조금 넘는 소국이다. 오스트리아는 수십 년 전까지도 세계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나라였다.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혼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오스트리아를 세계만방에 알린 이가 있으니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다음주 27일은 그가 태어난지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스트리아정부는 일찌감치 2006년을 ‘모차르트의 해’로 정하고 범국가적 기념행사를 준비해 왔다. 그가 탄생한 잘츠부르크와 빈 두 도시는 수천억을 들여 새로 단장했고, 올해 총 2600여개 행사로 관광객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지금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제품엔 종류에 관계없이 모차르트이름이 붙여져 있다. 초콜릿, 커피, 치즈 등 먹거리와 옷가지 등 수백 종에 이른다. 이 도시의 일자리 3개 중 한 개는 모차르트와 연관돼 있다. 모차르트의 브랜드가치가 무려 88억 달러(8조8000억 원)에 이를 정도라니 대단하다. 오스트리아는 한마디로 모차르트가 먹여 살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지속가능한 한류지원을

이 같은 ‘모차르트효과’는 우리의 한류를 생각하게 한다. 90년대 말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는 지금 대만, 홍콩,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전역과 일본까지 진출했고 이젠 사우디 등 아랍국가에로 번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의 한류처럼 폭 넓게 이웃 민족을 열광시킨 적은 일찍이 없었다.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의 문화적 가치는 매우 크다.

이제 문화산업은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핵심 산업의 하나다. 한류현상은 설계되거나 계획되지 않은 성공이다. 치열한 국내경쟁의 소산물인 것이다. 영화, 대중가요, 드라마 등에서 생산된 모든 문화콘텐츠가 그렇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떠오른 한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류가 일시적 유행이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모차르트효과’나 브랜드가치가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수한 국산 문화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각종규제와 제한을 철폐 완화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모차르트를 지원하듯 우수한 한류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너무 조급해선 안 된다. 모차르트효과도 20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렸음을 상기하자. ‘모차르트 같은’ 한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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