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불교에서는 수행자에게 두 가지 부끄러움에 대해 설파한다. 안으로 향하는 부끄러움과 밖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이다. 안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은 스스로가 자신을 평가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며, 밖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누군가로부터의 비난을 우려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사회 법규 또는 공중도덕을 위반했을 때, 누군가의 눈에 띄었음을 뒤늦게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것은 밖으로 향해 있는 부끄러움을 경험한 것이다.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본인의 평판 저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깔려있다.

프로이드는 인간성을 이드, 에고, 슈퍼에고(초자아)의 세 가지 체계로 나눈다. 이드는 본능에 기인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다. 에고는 쾌락 본능과 사회 규범을 조정해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한편 초자아는 인간성의 도덕적이고 비판적인 측면을 표현한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과 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자아 이상은 선을 지향하고, 양심은 악을 배제하는 기본 개념을 가진다. 초자아는 개인차가 크며 주로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데, 적절한 보상과 처벌에 의해 당연히 지켜야 할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안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은 양심에 의해 평가된다. 초자아는 행동과 심리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작용한다. 양심의 평가는 밖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에 우선하는데, 안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밖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언행이 사전에 차단되기도 한다.

부끄러움은 때로는 사회생활을 힘들게 할 수 있고, 지나친 경우 치료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부끄러움 자체는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부끄러움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긍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사회를 위한 건강한 부끄러움이다.

불가에서는 이러한 감정 상태를 `참(양심)`과 `괴(수치심)`라는 이름을 붙여 선한 마음으로 분류한다. 물론 반대 개념인 `양심 없음`과 `수치심 없음`은 불선(不善)한 마음으로 분류한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따니빠따에는 `양심과 수치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라는 게송(偈頌)이 있다.

세상에는 자신이 가진 크고 작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탐하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이들은 안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은 마음 한쪽 구석에 밀어 넣은 채, 그래도 밖으로 향하는 부끄러움이 걱정되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며 탐욕을 즐겨왔을 것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그저 운이 나빴다 생각하겠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천만 다행히도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가진 바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은 주목받았을 때 드러난다. 초자아의 양심에 따라 마땅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할 수도 있고 당장의 불편한 현실을 피하려 거짓 변명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면 대부분의 경우 얼굴색이 붉어진다. 체내 자율 신경 중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표피 혈류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양 볼은 타 부위보다 혈관이 많고 피부가 얇은 편이라 더욱 붉어진다. 이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당연히 부끄러워야 할 상황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얼굴도 붉어지지 않는다. 비정상 생리 반응 시스템을 갖춘 이들이다. 이런 사람을 한자성어로 `후안무치(厚顔無恥)`, 즉 `낯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특히 사회 지도층에서 후안무치한 언행이 난무하고 있다. 어린 시절 초자아가 적절한 보상과 처벌에 의해 형성되듯이, 이런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불이익을 경험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이 같은 사회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공정과 상식이 있는 사회로 가는 여정에는 건강한 부끄러움이 함께해야 한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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