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2월 4일은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立春)이다.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는 입춘은 보통 음력 정월에 들며 흔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여겨진다.

봄의 시작. 이 때문에 봄 춘(春) 자 앞에 들 입(入) 자를 쓰는 걸로 잘못 아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입춘은 들 입(入) 자가 아닌 세울 립(立) 자를 쓴다. 입춘. 봄을 세운다.

관련해서, 들 입 자 가 아닌 세울 립 자를 쓰는 건 봄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서 만들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해도, 그럴듯하다.

그래서일까. 예로부터 입춘엔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나눠주거나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온다. 왕궁에서부터 양반가, 일반 백성의 구분도 없는 풍속이다.

조선시대엔 예문관에서 입춘첩을 지어 적어 임금에게 바치기도 했고 일종의 경연이 열리기도 했다. 양반가에선 집안마다 고유의 문구를 적은 입춘첩이 있기도 했다.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가까이는 부모 형제 자식, 크게는 나라와 좁혀선 집안의 안녕과 평안, 번성, 경사, 벽사를 바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입춘문(立春文)이라고도 한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가장 유명한 입춘첩 문구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여덟 자 일 것이다. 크게 길하고 경사로운 일이 많이 있으라는 축원이다.

한해 내내 따뜻한 봄처럼 평안하고 복되라는 축원. 하도 많이 써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미수 허목이라는 사람이 지은 문구라 한다.

유생 신분으로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를 비판하며 낙항한 허목은 인조 반정 이후 조정에 나아가 사헌부 대사헌과 이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남인의 거두였다.

시문에 능하여 당대의 대가, 부호들이 그에게 묘비명과 묘 주인의 삶을 적은 신도비명을 부탁하였다 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여덟 자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시절은 입춘인데 대선판은 찬바람 씽씽 부는 엄동설한이다.

자고 나면 김혜경이 어떻고, 김건희가 어떻고, 눈 뜨면 이재명이 뭐가 어떻고 윤석열이 뭐가 저떻고, 이래서 저렇고 저래서 그렇고, 날 선 언어와 한기가 풀풀 날린다.

한기 풀풀 날리는 가운데서도 따뜻한 봄 같은 반가운 소식들도 눈에 보인다. 각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소소해서 소중한, 따뜻해 보이는 공약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경기도에서 시행했던 극저신용대출 사업 확대 검토를 약속했다. 이재명의 확실한 행복, 명확행 15번째 공약이다.

극저신용대출 사업은 저신용 취약계층에 1%대 이율로 300만원까지 최장 5년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300만원. 작다면 작고 크다면 엄청 큰 돈이다.

실직 후 코로나19로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50만원을 빌려 당장의 생활비를 해결한 어떤 분은, 이후 일자리를 얻어 소득이 발생하자 대출금을 조기에 상환했다.

이 후보가 "시행 첫해인 2020년부터 약 2년 동안 8만 5천여명의 도민에게 917억원의 대출을 시행했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 사연이다.

"자산도 소득도 담보도 없는 저신용 도민들이 단 몇십만원조차 구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의 순간까지 몰리는 현실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게 이 후보 말이다.

300만원. 누구에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절박한 누구에겐, 이 후보 말대로 `극단적 선택의 순간`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는 돈이다.

이 후보는 또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공립유치원 통원버스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공약도 발표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62번째 소확행 공약이다.

초등 병설 유치원에 배치된 버스를 초등 저학년생도 함께 이용하도록 하는 등 어린이 통학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아이들 엄마 아빠가 반길만한 내용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법원이 주라고 판결한 법정양육비를 악의적으로 안 주는 `배드파더스`, `나쁜 아빠들` 대신 정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법정양육비는 아이들을 떠맡은 한부모 가정에선 많은 경우 말 그대로 `생명줄`과 같은 돈이다. 그걸 나라가 먼저 지급하고 추후 `나쁜 부모`에게서 추징하겠다는 내용이다.

짧은 영상으로 공약을 소개하는 윤 후보의 `59초 쇼츠` 시리즈 21번째 공약이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배드파더스 신상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단순 신상 공개만으로는 피해자가 당장의 생계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후보가 밝힌 `양육비 선지급, 후 추징` 공약 배경과 이유인데 합리적인 판단이다. 양육비를 제때 지급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가정엔 가뭄의 단비 같은 공약일 것이다.

윤 후보는 또 공공기관이나 기업 채용 과정에서 최종단계에 탈락한 구직자들 가운데 원하는 사람에 한해 해당 업체가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양육비 선지급에 이은 22번째 `59초 쇼츠` 공약이다.

"형식은 구인기관 자율에 맡기고 요청 지원자에 한해 피드백을 제공해 채용 과정에서 구인기관과 구직자 간 배려와 발전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게 윤 후보 설명이다.

기업 입장에선 채용 탈락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부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직자 입장에선 왜 떨어졌는지 납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공약이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외에도 안철수 후보는 규제 완화 등과 관련된 공약을,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위한 공약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아당기려 하고 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 같은 이는 전국민 1억원 지급 등 좀 허황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파격 공약들을 내놓으며 "내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급인족(家給人足).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은 평안하다` 라는 뜻의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대구를 이뤄 많이 쓰이던 입춘첩 문구였다.

집 가(家) 집이 넉넉하고, 족할 족(足) 사람이 살기에 족하다. 가급인족, 집집마다 먹고 사는 게 넉넉하고 사람마다 의와 식에 부족한 게 없다는 뜻이다.

전한(前漢) 시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편찬한 전21권 `회남자`(淮南子) 제18편`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가급인족, 한마디로 먹고 살 만하다는 뜻이다.

원래 문장은 이렇다. 영백성가급인족(令百姓家給人足), 백성들로 하여금 집집마다 식량이 넘쳐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하였다.

고삼후지후(故三后之後) 무불왕자유음덕야(無不王者有陰德也), 그러므로 삼후의 후예들이 왕이 되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그것은 음덕(陰德)이 있었기 때문이다는 뜻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이 되어 백성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자, 먼저 백성들을 먹고 살게끔 하라, 백성들을 풍족하고 만족하게 하는 게 먼저라는, 후대를 위한 진언이다.

어느 소설가의 소설과 어느 시인의 시처럼 마음 편히 지친 몸을 누일 `지상에 방 한 칸` 갖기 어려운, 극도의 빈곤과 외로움에 시달리다 `고독사`라는 이름으로 아무도 몰라주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도무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일가족이 다함께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는 이런 참담한 일들이 여전히 생기고 또 생기는. 이런 척박하고 아픈 세상을.

좀 살 만한, 먹고 살 만한, 편안하고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적어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려는 그런 `왕`을 뽑는 대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뭘 좀 마이 멕여야지 뭐.

2005년 개봉한 영화 `웰컴 두 동막골`에서 인민군 장교가 마을 촌장에 부락민들을 수십년동안 휘어잡고 다스려 온 비결을 묻자 촌장이 한 말이다. 뭘 좀 마이 멕여야지.

가급인족. 집집마다 사람마다 먹고 살기 족하다. 먹고 살 만하다. 뭘 좀 마이 멕여야지. 입춘. `동막골 촌장` 같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대선이 됐으면 하는 서원을 내본다.

유재광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