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이 빠질까 두려워 머리를 안 감는 자는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설 연휴 전 대선 후보 TV 다자토론에서 `윤석열`을 볼 수 있을까. 전망은 `글쎄요`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 건너 가고 있다` 쪽으로 가는 듯하다.

대선후보 TV토론을 위한 여야 실무협상이 28일 오후 진행된다. 국민의힘은 이 실무협상에 오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실무협상 불참을 통보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주관하는 TV토론은 법원 판결이나 선관위 대선 법정토론 참가 자격 기준에 의하면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후보가 초청 대상이다.

방송 3사는 이들 4명의 후보를 초청해 오는 31일 또는 2월 3일 TV토론을 여는 방안을 제안했다. 법원의 양자토론 방송금지 가처분 인용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토론 방식과 룰을 정하기 위한 실무협상 불참을 통보했다. 어떤 명분과 이유를 갖다 붙여도 드러난 실제와 결과는 4자 토론을 거부한 것이다.

`양자토론이 아닌 4자 토론을 하라`는 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에 따라 연휴 전 윤석열 후보가 참여하는 4자 토론은 사실상 무산됐다. 방송 3사 TV토론은 이재명-안철수-심상정 후보만 참여하는 3자 토론으로 열릴 공산이 커졌다.

대선 첫 TV토론에서 제1야당 대선 후보이자 많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유력 대선 후보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초유의 일이 현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3자 토론마저 열리지 못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제1 야당 후보를 빼고 토론회를 여는 게 모양새나 여러 면에서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3자 토론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국민들 입장에선 유력 대선 후보가 쏙 빠진 `김 빠진 사이다`를 만드는 격이고, 그마저도 무산된다면 말 그대로 재를 확 뿌리는 격이다.

`뭐가 무서워 일을 이렇게까지 만드냐`는 논란과 비판이 쏟아질 게 뻔하다. 일단 국민의힘 입장과 논리는 4자 토론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양자토론을 먼저 하자는 거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TV토론 실무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은 전날 "국민은 양자토론을 더 보고 싶어하고 더 듣고 싶어한다. 양자토론을 먼저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말하며 성 단장은 이재명 후보를 향해 "뭐가 두렵냐, 대장동이 두렵냐"며 "비겁하게 4자 토론의 커튼 뒤에 숨지 마라"고 `비겁하다` 했다.

발끈한 민주당은 입장문을 내고 "그토록 양자토론을 원한다 하니 들어주겠다. 31일 양자토론 받겠다. 대신 양자토론도 하고 당일 4자 토론도 같이 하자"고 맞받았다.

박주민 민주당 선대위 방송토론콘텐츠단장은 "이 후보는 양자토론도 하고 4자 토론도 할 것이다. 4자 토론에 참석할지 윤 후보만 입장을 밝히면 된다"고 쏘아붙였다.

박 단장은 앞서 전날 오전 국민의힘에서 양자토론을 다시 제안해 오자 "4자 토론 회피 수단으로 양자토론을 들고 나온 거 아닌가. 그러지 마라"는 취지로 직격했다.

대선 토론회를 둘러싼 `핑퐁게임`을 보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반응은 `4인 4색` 윤석열 후보 공세에 모아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토론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하면 될 텐데 자꾸 복잡하게 한다"며 국민의 운명을 책임질 후보로서 (토론회 참석은) 도리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들께선 신발을 하나 사도 다 비교하면서 사는데"라며 "좀 진심을 갖고 진정성 있게 접근해주길 요청한다"고 윤석열 후보를 에둘러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저와 토론하는 게 무섭나 보다"라고 비꼬으며 "법원 결정도 무시하고 민주주의에서 리더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윤 후보를 저격했다.

"본인이 (양자토론을) 원하는가 보죠"라고 거듭 비꼬듯 말한 안 후보는 "국민들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정당은 그에 따라 국민이 심판할 거라 생각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윤석열 후보를 아예 희화화해서 비판했다. "물지 않는다. 해치지 않을 테니 도망가지 마시고 토론에 나오셔도 괜찮다"고 살살 `달래듯` 말했다.

심 후보는 그러면서 정색을 하고 "늘 법대로 라며 왜 토론은 법대로 못하겠다는 거냐. 불리하다 싶으면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 게 윤석열의 공정이냐"고 따져 물었다.

4자 토론에 초청받지 못한 허경영 후보는 지지율 5%를 넘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우며 "이런 천벌을 받을"이라고 자신이 토론회에서 배제된 데 대한 분노를 표했다.

"지지율 5%면 300만이다. 300만 국민 의견을 무시하나. 하늘이 무섭지도 않나. 그렇게 허경영이 무섭나" 등 원색적인 비난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토론 참가를 요구하고 있다.

대선 토론 관련 `사면초가`(四面楚歌)인 윤 후보는 "양 당이 합의한 사항을 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기왕에 양자토론에 합의했으니 지키자는 취지의 해명이다.

윤 후보는 그러면서 "제가 우리 당 내부 경선 과정에서 다자 토론을 쭉 해봤지 않냐"며 "해보니 다자 토론은 상대에 대한 검증과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국민 관심이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집중되고 있는 만큼 우선 양자토론을 하는 게 국민 알권리 충족에도 더 부합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힘에서 대장동 대장동 하면서 그거(양자토론)라도 하자고 해서 응한 것인데"라며 `실소`를 금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당장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옹졸한 제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용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양자토론 제안은 토론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같이 적었다.

"법원 인용에도 또 양자토론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명분도 없고 방송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토론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옹색해 보인다"고 거듭 `바른소리`를 쏟아냈다.

`옹졸`, `옹색` 같은 직설적인 단어로 양자토론 제안을 비판한 이 의원은 "윤석열 후보는 앞서가는 수권 후보로서 어떤 형식의 토론에도 당당히 임하라"고 주문했다.

당내에서조차 이런 쓴소리와 비판이 나오는 양자토론을 사실상 윤석열 후보가 다시 제안한 배경과 의도를 두고 정치권에선 결국 `부자 몸조심` 아니냐는 풀이가 많다.

일단 양자토론은 이재명 후보 1명만 상대하면 된다. 하지만 4자 토론은 막아내야 할 창이 3자루로 2자루 더 늘어난다. 공세가 윤석열 후보에 집중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지지율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고, 특히 안철수 후보 입장에선 3강 도약의 발판, 최소 확실한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세를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최근 주춤하고 있는 안 후보가 4자 토론을 기화로 다시 상승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윤 후보 입장에선 괜히 판을 깔아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잘하면 본전이나 플러스 알파 조금, 반면 잘못하면 의도치 않는 난감한 상황, `훅` 하고 한 방에 갈 수도 있다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위정유목`(爲政猶沐)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목`(沐) 자는 머리감을 목 자이다. 직역하면 `정치를 하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법가(法家) 사상의 확립자로 `법치`를 주창한 한비의 `한비자(韓非子) [육반](六反)편에 나오는 말이다.

`육반`은 여섯 가지 상반되는 일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거나 일을 하는데, 궁극적으로 법도에 어긋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위정유목`은 고지유언왈(古者有諺曰) 위정유목야(爲政猶沐也) 수유기발(雖有棄髮) 필위지(必爲之)에서 나온 말이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머리를 감는 일과 같다. 비록 머리털이 빠질지라도 반드시 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머리를 안 감을 수는 없다. 때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정치도 그와 같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위정유목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엔 이익이다. 거꾸로 작은 손해를 두려워 해 할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더 깊고 큰 손해로 돌아온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머리칼 빠지는 걸 아까워해 머리를 안 감고 버티기만 하다간 종내엔 두피나 머리 자체를 상하거나 큰 탈이 날 수 있는 것처럼.

대선 TV토론, 윤 후보 입장에선 안 해도 지지율 1위인데. 법정토론도 아니고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갈 필요가 있나, 괜히 지지율만, 애지중지 기르고 모은 머리칼만 빠지는 것 아니냐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애기발지비(愛棄髮之費) 이망장발지리(而忘長髮之利) 부지권자야(不知權者也).

머리털 빠지는 걸 안타까이 여겨 머리를 감고 가꾸는 것을 잊는다면 이는 무엇이 더 중한지 모르는 자이다. 한비의 말이다.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자.

`혹시 지지율 까먹을까봐 온갖 꼼수와 변명으로 대선 토론을 회피하는 후보`라는 세간의 의심과 의혹. `내가 무섭냐, 비겁하다`는 다른 대선 후보들의 날 선 비판과 공세.

차갑든 따뜻하든 머리에 물을 안 묻히고 머리를 감을 순 없다. 머리칼 한 가닥 안 빠지고 머리를 감을 순 없다. 토론도, 정치도 그러하다. 상처와 손해, 잃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토론 회피 후보`라는 의심. 감수할 것인가. 꼬리표처럼 가지고 갈 것인가. 무엇이 중한가. 머리칼인가 머리인가. 윤석열 후보의 전향적인 판단을 바란다.

유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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