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철현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필자가 좋아하지 않는 말 중에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문장 그대로, 일부분만을 가지고 전체를 미루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을 살다보면 일면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하나를 알면 하나만 아는 것으로 끝내려 애써 노력한다. 굳이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라는 인지적 왜곡 개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부분만으로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는 태도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사회를 황폐화시키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직접 활용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고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는 수준을 넘어 1인 미디어로서의 역할까지 하게 됐다. 빠른 전파력과 정보의 파급력은 작금의 시대적 변화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간결하고, 더 선명하며 더 자극적인 `메시지`, `구호`, `이미지`, `영상`으로 소통하게 되고, 그럴수록 압도적 주목을 받게 되고 재생산하게 된다. 거기에 섣부른 선과 악으로의 규정, 아군과 적군으로의 구별 과정을 통해 삶이 건조해지고 황폐해지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를 사막화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심리적 거리의 간극을 넓혔다.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고 각자 힘겹게 살아가면서 한껏 곤두선 신경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내 이익을 요구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분만을 가지고 전체를 짐작하는 것이 맞을까? 누구나 망설임 없이 `아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말 한마디, 이미지 한 컷에 열광하거나 분노한다. 하루아침에 누군가를 악인 또는 의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신속하고 가벼운 이 집단적 의식의 흐름을 누군가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해봐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까? 내 삶에서 이 함정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혹시 독자 중에 필자와 비슷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하는 사람이 몇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관조적 태도로 다음 단락을 맞이해도 좋겠다.

이야기의 일상화. 필자는 여기서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찾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는 단어와 문장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사실을 가장한 의도와 판단들뿐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맥락을 통해 배경 상황을 이해하고, 왜 저 사람이 저런(때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을 알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부족하다.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부족한데 이는 아마도 듣고자 하는 사람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서 풍성하게 꽃피려면 몇 가지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판단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각자 가치관이 있고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색깔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는 의도적으로 판단을 보류하면 좋겠다. 이는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겠다는 일종의 무언의 다짐이자, 경청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인 것이다. 둘째, 이야기가 바로 나와 너의 연결고리이자, 이 사회의 편린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사회는 굵직한 구호나 강렬한 이미지로 구성되고 연결된 것이 아닌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이 사회의 모자이크 한 조각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의 모자이크 한 조각이 아닌, 단조로운 배경 모자이크 한 조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조각이 동일한 비율과 무게감으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화려하지 않아도 뽐낼 것 하나 없어보여도 동일하게 소중한 이야기 한 조각이다. 그 한 조각들이 우리 사회의 편린이며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셋째, 나의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면서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내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마치 끝말잇기 하듯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명하듯 내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공명은 나와 너의 삶 뿐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고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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