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이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노래들이나 문학,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도 주로 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사랑에 매달려 살아가고, 사랑 때문에 많은 일을 하게 된다. 또 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받으며 살다가 사랑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룻동안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혹은 이와 비슷한 표현을 수없이 하곤 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만큼 가장 어려운 것도 없지 않을까. 사랑을 정의내리기 위한 많은 시도들도 있었고, 과학적으로 이 감정을 풀어내기 위한 노력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곤 했다. 말로는 표현하기 쉬워도 정작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사랑은, 그것을 보여주고자 할 때 더 많은 어려움이 있는 법이다.

또한 사랑만큼 공통의 가치이면서도, 한편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감정과 너의 감정이 다르고, 내 방법과 너의 방법이 다른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먼저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든지, 또는 받은 다음에야 내가 줄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어떠한 조건이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이 아니라 투자일 뿐이다. 요즘엔 연인이나 가족 간에도 사랑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죽고는 못살 것 같던 사람들이 또 한 순간에 원수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돈이나 물질로 대체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들린다.

참사랑을 구현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이유도,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또는 각 종교의 절대자들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를 사랑하여라"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사랑의 표준으로 삼는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장 악하고 극단적인 감정을 가질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좁고, 작은 것인지 반성하게 하고, 조건 없고, 끝이 없고, 한결같은 사랑을 살도록 가르친다.

물론 사랑에도 단계가 필요하다. 가장 가깝고, 자주 보는 이들을 먼저 사랑해야 하고, 그 다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해야 하며, 나아가 우리가 만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이들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 그리고 절대자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절대자에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에서 드러나고, 이웃 사랑은 그 절대자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아직 즐거운 명절 연휴를 소중한 이들과 함께 만나 즐겁게 보내기는 어렵지만, 마음으로는 소중한 분들과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란다. 아울러 한 해의 즐거운 시작으로 올해 전체를 더욱 알차고 기쁘게 만들어 나가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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