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지난 12일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 한 원룸에서 교제살인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전 여자친구 A씨의 집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 발생 당시 집에는 전날 고향에서 올라온 A씨의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A씨와 3개월 간 교제한 것으로 알려진 피의자는 헤어지자는 A씨의 말에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2단지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39층 바닥 콘크리트 타설 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하청 노동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 5일에는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의 냉동 물류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현장에 투입된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숨진 소방관들은 송탄소방서 119구조대 소속으로 잔불을 끄고 인명 수색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불이 다시 번지며 목숨을 잃었다.

2022년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한 달의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 사회 죽음의 행렬은 계속됐다. 2021년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로 828명이 사망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제조업 등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된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대부분이 일어났다. 정부는 이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올해 산재 사망사고를 700명 초반대까지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를 비롯해 연초부터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산업재해 소식들은 과연 정부 목표가 달성가능할지 의문을 품게 한다.

사람들이 산업재해로만 세상을 등지는 것은 아니다. 살인도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2018년 기준 여성이 25번째로 많이 살해된 나라다. 살해당한 여성의 수를 강력·폭력 범죄까지 넓히면 한국의 순위는 OECD 9번째까지 치솟는다.

한 주 뒤면 민족의 대명절인 설. 코로나19는 설 풍경마저 바꿔 놓았다. 가족이 다 모일 수 없다고 해도, 만남을 유예하거나 있어서 못 보는 것과 죽음이 갈라 놓은 가족의 부재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설이 교제살인으로, 산재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가족을 떠올리며 애통해하는 `서러운 날`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린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시인은 `안간힘`이라는 제목의 산문집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새겼다. "죽음으로 인해서도 달라지지 못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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