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Melbourne Center, E460, Maintaining FL 350

(멜버른 관제소, E 항공 460편입니다. 고도 3만 5000피트입니다)

E460, Melbourne Center, Roger. Identified. Maintain CPDLC

(E 항공 460편, 멜버른 관제소입니다. 위치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CPDLC로 교신합니다)

관제사와 교신을 마치고 나니 저 아래 애들레이드가 눈에 들어온다. 비행훈련을 받았던 곳이라 그런지 애들레이드는 고향처럼 느껴진다. 전봇대처럼 삐죽 솟아오른 애들레이드 항구 굴뚝은 대전역처럼 익숙하고, 그 옆에 있는 패러필드 공항은 대흥동 집처럼 편안하다. 그리고 그곳 비행학교에는 아직도 마리나 교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함께 비행했던 제임스, 존 그리고 칼리드는 지금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까?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은퇴하고 나처럼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 우리가 저지른 만행을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을 기대하며 내가 먼저 나의 `웃픈` 사건을 고백한다.

1994년 2월 23일, 나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작은 비행기에 나를 처음 맡긴 날이다.

첫 비행훈련이 주는 긴장감에 비해서 훈련은 지극히 단순하다. 대부분은 교관이 시범을 보이고 훈련생은 교관의 지시를 받아 간단한 조작을 연습한다. 나는 첫 비행을 꼼꼼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나름 자신감이 넘쳤다.

훈련을 나가기 전에 운항실에서 마리나 교관을 만났다.

"오늘은 첫 비행이니까 이륙과 착륙은 내가 할게. 빠삐용(내 영어 이름)은 조종간에 손을 얹고 감각을 느껴봐. 공중에 올라가면 수평 직진비행과 선회비행을 연습하자."

비행기에 들어가니 계기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주 동안 연습해서 그런지 교관의 조작이 낯설지 않았다.

비행기 문을 닫으니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시동을 걸기도 전에 조종실은 이미 사우나실이 돼 버렸다. 뜨거운 열기는 내 살을 꼬집는 것처럼 따가웠고 땀은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그 더운 날씨에도 마리나 교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히 시동을 걸었다. 푸드덕 소리를 내면서 엔진이 돌아가더니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리나 교관은 관제탑에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털털거리는 비행기를 활주로로 몰고 갔다.

"Cleared for takeoff. Runway 08(08번 활주로에서 이륙을 허가합니다)."

이륙허가가 나오자 마리나 교관은 내 손을 스로틀(액셀러레이터)에 올렸다.

"빠삐용, 준비됐지?"

마리나 교관이 엔진 출력을 최대로 밀어 넣으니 엔진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탁탁탁탁!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비행기 아래에 무엇인가 부딪치면서 둔탁한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비행기 아래에 무언가 매달려 있나? 아니면 누가 비행기에 돌멩이라도 던지는 건가? 이 정도면 비행기에 구멍이 날지도 몰라. 설마 비행기가 망가지는 건 아니겠지?`

나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엉덩이를 들고 조종실 문 위에 있는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마리나 교관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빠삐용, 조종사가 되려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놀라면 어떻게 해. 2월 호주 햇살은 너무나 강렬해. 태양이 활주로를 달구면 아지랑이가 비행기 바닥을 두들겨서 이런 소리가 나는 거야. 누구나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 힘을 내. 내가 도와줄게. 하하하하"

이제 비행을 시작한 훈련생 중에는 28년 전의 나처럼,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옆에 마리나 교관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 곁에는 또 다른 마리나 교관이 있을 테니까. 아마도 10년 또는 20년 뒤에는 나처럼 초보 조종사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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