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회복 지원 감염 예방 차원 도입
법정소송에 헌법소원까지 논란 가열
국민 납득할 과학적 기준 재조정돼야

정재필 취재 1팀장
정재필 취재 1팀장

# 대전에 직장을 둔 40세 직장인 김 모 씨는 작년 말 곤욕을 치렀다. 업무에 쫓겨 백신 접종 시기를 차일피일 미뤘다가 단계적 일상 회복이 도래하자 백신 접종을 잊은 채 생활했다. 그런데 단계적 일상 회복이 중단되고, 방역 패스가 도입되자 저녁을 먹자는 외부인들의 요청을 거짓말로 핑계 대며 사실상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 공공기관 대외협력 파트 박 모 부장은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지만 외부일정을 잡지 않은 채 직장과 집만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생활을 하고 있다. 특정 의약품에 쇼크가 있다 보니 백신 접종은 아예 꿈도 못 꾸는데 방역 패스가 시행되면서 집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출장 갈 일이 생기면 번거롭지만 48시간용 PCR 음성 확인서를 발급받고 있다.

`방역 패스`(접종 증명·음성 확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코로나 19 관련 방역정책 중 하나다. 백신 접종자의 일상 회복을 지원하고, 고위험 다중이용시설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지난해 11월 1일 유흥시설 등에 적용된 후 12월 6일 식당·카페로 확대 적용됐다. 12월 13일부터는 방역 패스 대상 업소의 전자출입 명부 사용이 의무화됐다.

방역 패스는 시행 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식당과 학원 등으로 확대되자 논란이 이어졌다. 급기야 방역 패스에 대한 실효성과 적법성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은 물론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학원·도서관·스터디카페에 대한 `청소년 방역 패스` 효력을 일시 정지시켰다. 대선이 코앞이다 보니 정치 쟁점화도 되고 있다.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선진국에서도 찬반 갈등은 물론 반대 시위, 찬성 정치인에 대한 살해 협박이 제기되는 등 세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10일부터 대형마트나 백화점, 쇼핑몰, 농수산물유통센터 등에도 방역 패스를 확대 적용시키며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면적이 3000㎡ 이상인 대형 쇼핑몰과 마트, 백화점 등 전국 2천여 곳이 대상이다. 논란이나 반발을 의식한 듯 정부는 계도기간을 거쳐 16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들 대형매장들은 당초 출입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방역 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형평성 논란과 코로나 19 유행 안정화 등 차원에서 적용 대상으로 포함됐다.

이번 조치가 찬반 논쟁에 기름을 붓는 것은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혼밥이 가능했던 미접종자는 백화점, 마트에서 혼자 장보기가 금지된다. 백신 접종 자체가 여의치 않은 임신부나 기저질환자 등에게 생활필수품까지 구입 못하게 하는 건 과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미접종 판매사원은 쇼핑은 못하지만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마트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아울러, 대형 쇼핑몰과 마트 등에서 생필품 구매는 안 되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시내버스와 지하철 이용은 가능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시민은 종교시설이 방역 패스 적용시설에서 제외된 점도 의아해하고 있다.

방역 패스 적용 시설이 점차 확대되면서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온라인에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반발하는 댓글이 즐비하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찬반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기본권 침해와 형평성 논란이 주류를 이룬다. 백신 패스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접종 완료자와 미접종자를 차별하고, 백신을 안 맞으면 굶어 죽게 됐고,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세상이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국민 혼선에 무용론까지 제기되자 정부가 기본권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업 필수시설의 적용범위를 최소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감염병은 국가 재난 상황이다. 공공의 안전이 우선시 돼야 한다. 방역 패스 논란이 커질수록 국민의 일상생활은 혼란이 가중되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할 수 있다. 정부는 방역 패스 적용기준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 기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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