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다문화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어색하지도 않다. 한때 단일 백의민족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으로 살아간 때도 있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다. 시골에서는 다문화 가족이 다반사다. 하지만, 공동체 문화 속에서 그들과 공감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명나라 말 청초 호남성 출신 사상가이자 학자 왕 부지는 출생지가 다른 사람끼리 한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불편하여 마치 말과 당나귀를 교접하여 노새를 낳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공감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당시 화두는 공감과 소통보다 강압적인 수단이었다. 한 무제는 이민족들이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도 금지하는 `번순복비(反脣腹誹)`의 죄로 속으로 비웃는 사람까지도 단죄한다. 어느 날 황제는 청렴하지만, 이민족 출신 신하 안이(顔異)가 입술을 내민 것을 두고 황제를 비방한 것으로 오인하여 사형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보면 동질적인 민족끼리도 공감보다는 강압적 통치 수단을 앞세운다.

궁예가 왕위에 오른 지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궁예의 왕비 강씨가 갑작스럽게 국문(鞫問) 장으로 끌려 나온 것이다. 궁예는 왕비가 간통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죽인다. 궁예는 어떤 증거도 심문도 없이 단지 `관심법(觀心法)`으로 알았을 뿐이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는 여전히 만조백관 앞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연산군은 `신언패(愼言牌)`로 신하들을 압도하려 한다. 연산군은 신하들의 직소를 막기 위해 신언패를 목에 걸린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이며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는 것이다.

군사정권도 마찬가지다.

최근 `민주화의 어머니`로 불린 배은심 여사께서 5.18 민주 광장 아들 이한열 열사 곁으로 영면하였다. 암울했던 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공감보다는 국가 권력의 과잉진압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입이 있어도 입이 없는 듯 한평생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한편, 한 고3 학생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방역 패스를 강제하는 정부 지침에 개인 신체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질병관리청장 등을 상대로 한 검찰 고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사자들 간 나름 합당한 이유를 서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던 것으로 상호 공감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공감(empathy)이란 <소유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kin)이 제시한 말로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접속의 시대에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의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소통 능력의 확장으로 다문화적인 사람들이든 동질 문화적인 사람이든 공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질 문화인들의 세대 간의 공감은 말할 것도 없다.

공감은 누구와 감성적으로 함께한다는 것으로 이질적인 타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중등학교 교육과정 핵심 키워드도 공감과 배려이다. 공감은 이제 시대정신이다.

요즘 다문화적인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우리 사회의 공감력에 대해 명나라 왕 부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문화 시대의 우리 현대인들은 세대 간, 지역 간의 차, 빈부의 격차 그리고 문화 간 몰이해 등 여전히 극복해야 할 난제들을 안고서 살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공감이란 쉽지 않은 화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부터 시작하자.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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