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암 단순한 병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암 혹은 암환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암을 치료하는 종양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일반인 혹은 우리 사회가 암과 암환자에게서 느끼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의사로서 또 과학자로서 나는 암을 바라본다. 암은 병적인 상태이고, 따라서 없애거나 줄어들게 해야 할 존재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의 영역을 떠나면 암은 단순한 질병의 개념을 넘어서게 된다.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요소가 암의 의미에 투영된다.

미국의 지성이며 문필가인 수전 손택은 실제로 자신이 유방암을 앓고 난 후 명저 `은유로서의 질병`을 쓰게 된다. 그녀는 이 책에서 암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가 얼마나 환자들을 괴롭히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치료를 힘들게 하는지 예리하게 서술한다. 암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잘 발생하고, 주로 부끄러운 부위에 발생하는 병이라는 전통적인 오해는 떳떳하지 못함과 개인 책임, 더 나아가 저주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소위 그녀가 개탄하고 있는 `질병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가혹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전 손택이 암치료를 한 70년대 후반의 의료 환경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암을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의 부정적 인식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암치료가 발전해도 여전히 남아 있은 암의 상투적인 은유

나는 지난 글에서도 암환자가 암이라는 진단과 더불어 느끼는 감정 중에 암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죄책감이 꽤 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암 진단시 `암 선고를 받았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아직도 우리에게 암이라는 병의 형벌적 의미가 남아있다.

이런 암에 대한 은유는 텔레비전의 드라마에서도 비슷하다. 나쁜 짓을 일삼던 악역의 불행한 결말에 `갑작스러운 암`이라는 전개가 흔하게 이용된다. 또 극적인 죽음과 절망의 순간에도 주인공의 암진단이 등장하기도 한다. 여전히 드라마에서의 암은 위중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고, 인과응보의 죗값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불치, 절망이라는 암의 은유와는 달리 현실은 꽤 희망적이다. 최근의 암환자 통계에 의하면 완치의 개념으로 생각되는 5년 생존율은 70%를 넘어, 10명의 암환자 중 7명이 암진단 후 5년 이상 생존하고, 우리 주변에 암유병자는 약 215만 명이나 된다. 국민 25명 중 한 명이 암으로 치료 중이거나 치료를 끝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암환자를 이제는 보다 순화된 표현인 `암경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치료가 끝난 암경험자를 부르는 `암생존자`라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암과 관련된 용어에서도 의학적, 사회 문화적인 변화를 많이 느낄 수 있다. 부정적인 암의 은유는 의학 발전과 더불어 어느 정도 희석돼 가는 것 같다.

◇암은 나았지만 갈 곳이 없다

암환자가 증가했다는 것은 치료를 끝내고 가정과 사회로 복귀해야 할 암경험자가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치료과정 보다 더 힘든 제자리 찾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암치료를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난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오니 예전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 같고 동료와 가족 구성원으로서 동질감보다는 보일 듯 말 듯한 차별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경제력으로 우린 이미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이런 세심한 차이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우리 사회의 질적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암경험자의 재활과 복귀를 방해하는 암의 은유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가끔 배려 혹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암환자 치료의 진정한 종결은 만족할 만한 사회복귀일 것이다. 암환자를 둘러싼 전통적인 은유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소개한 수전 손택의 저서는 이런 부분에서 항상 인용되는 고전이다. 이제 암환자의 치료와 더불어 재활과 복귀에도 신경을 써야 할 시기다.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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