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혁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
김상혁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최근 서울 한복판 인사동 거리에서 15세기 세종시대에 사용한 천문관측기기가 발굴됐다. 해와 별의 움직임을 측정해 시간을 알 수 있었던 `일성정시의`라는 시계 장치다. 당시의 시간 측정은 국가의 제도와 통치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행위였다. 따라서 조선 사회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알리고, 규범화하는 것은 임금이 백성을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를 통해 국가의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일성정시의 제작에는 세종이 깊이 관여했다. 이 천문시계의 구조와 과학적 원리에 대해 세종이 직접 설명한 부분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세종은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운동하고, 매일 약 4분씩 일찍 뜨고 지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살폈다. 또한 오늘날 천문학에서 말하는 윤년(閏年)의 발생과 세차운동(Precessional motion)으로 생기는 현상들을 일성정시의를 통해 보정할 수 있도록 했다.

15세기 조선의 천문학이 이슬람문화권, 원나라와 함께 세계적 수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종 자신이 직접 과학 정책을 살피고, 집현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공동연구를 추진하도록 인재의 선발부터 연구 활동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종은 어린 시절 아버지인 태종과 함께 물시계를 제작하는 등 실질적인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임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세계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민간인 우주여행 시대가 도래하고, 블루오리진과 버진 갤럭틱 등 여러 기업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우주 개발을 향한 도전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행성 탐사 실험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29년 지구로부터 3만 1000㎞까지(지구에서 달까지 평균 거리가 38만 4400㎞임을 감안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 다가올 소행성 아포피스에 대해 한국천문연구원이 탐사를 계획 중이다. 세계적인 달탐사 프로젝트 등 우주과학 탐사분야에서 우리나라도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세종시대의 천문학은 당대 세계적 수준의 천문과학을 융합해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과학기기와 역법 체계를 만들어냈다. 일성정시의를 비롯해 자동물시계 보루각루와 흠경각루, 앙부일구, 정남일구, 소간의, 칠정산 등은 우리의 소중한 과학유산들이다. 세종시대의 위대한 천문학 전통은 21세기 뉴스페이스 시대의 굳건한 토양이 되어 세계적인 우주과학 기술로 발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독자적인 과학과 기술의 축적이 중요하다. 우주탐사의 후발주자로서 세계적인 연구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적 관심으로 뉴스페이스 시대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뉴스페이스 시대는 새로운 기회의 창구이며, 인류의 새로운 도전의 시기이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천문학 전통을 지녔고 그 전통은 현재에도 연결돼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험하고 파고들어 스스로를 귀한 존재로 만들라"는 세종의 명언처럼 미래 우주를 향한 탐사와 기술개발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상혁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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