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지난해 11월 말 `포브스`지에는 `기업공시` 문서에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 투자자가 그만큼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쉬운 언어는 모두의 소통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므로 민주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영미권 국가에서는 쉬운 언어 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쉬운 언어 쓰기는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영국과 달리 정부가 주도하는 미국과 비슷하다.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홍보 또는 문화 담당 부서장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여 공무원이 앞장서서 쉬운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에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를 두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등에서 활발하게 순화어를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전문용어든 순화어든 발표도 하고 고시도 하고 잘 하는데, 관리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쉬운 언어 쓰기의 중심에 있는 `국립국어원`만 하더라도 `새말모임`에서 만든 순화어를 수시로 발표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순화어 중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마땅한 개선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순화어 중에 `부스터 샷`을 `추가 접종`으로 대체한 말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백 브리핑`을 `덧보고`로, `북 아트`를 `책 꾸밈`으로, `리클라이너`를 `각도 조절 푹신 의자`로 대체한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순화어를 만드는 단계에서 억지스럽게 고유어를 사용하거나 단순히 직역하려고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 말을 사용할 사람들의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국립국어원`은 2008년에 `마블링`을 `결지방`으로 순화한 다음, 지금과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해 순화어를 홍보하였다. 그렇다면 2008년 이후 `결지방`은 얼마나 사용되고 있을까? 뉴스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빅카인즈`에서 `결지방`이라는 말의 사용량을 살펴본 결과, 2017년에 13회 사용된 것이 가장 많고, 2020년에는 아예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마블링`은 2010년 이후 매년 평균적으로 300회 이상 사용되고 있다. 이는 언론 홍보만으로 순화어를 확산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순화어를 잘 만드는 것이 곧 최선의 홍보 방안임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마블링` 정도는 그대로 써도 좋을 만큼 일상어가 되었지만, 굳이 대체한다면 `꽃지방`을 제안한다. `마블링`과 마찬가지로 침이 고이게 만들 수 있는 대체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쉬운 언어를 활용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누군가 순화어를 사용하고 싶어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나 누리집을 마땅히 추천하기 어렵다. 참고자료는 많지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예전에 발표한 것과 최근에 발표한 것이 뒤섞여 있으며, 추천할 만한 누리집도 국립국어원의 `말터`가 있지만 이곳에서 검색되지 않는 순화어가 너무 많다. 기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어 정리가 필요한데, 이를 한자리에서 검색할 수도 없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곳도 없다.

끝으로 17년이 지나도록 국어책임관 제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사실 쉬운 언어 쓰기는 국어책임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2항을 보면 국어책임관은 해당 기관의 정책 또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알기 쉬운 용어를 개발·보급하는 한편, 해당 기관의 국어 사용 환경과 국어 사용 능력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국어책임관은 이름에 걸맞게 공공언어를 책임져야 하지만, 아직까지 `유명무실`하다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6월에 일부 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앞으로 국어책임관을 지정해야 하는 기관의 수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비록 양적인 변화에 앞서 아직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국어책임관 제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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