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에밀 졸라의 유명한 기사 `나는 고발한다`는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운 프랑스 군 당국을 비난한다. 결백한 사람을 유배 보내고, 범죄를 은폐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맥락이지만, 지난 1일 철책을 넘어 북으로 돌아간 탈북민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고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짚고는 가야겠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올 정도의 대담함과 날렵함을 지닌 탈북민이라면 정부와 군 당국은 다른 사례보다 더욱 철저하게 관리했어야 했다. 체조선수였는지 권투선수였는지는 설명이 엇갈리지만, 아무리 운동을 했어도 쇠창살이 박힌 3미터 높이의 철책을 넘는 일은 일반인으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군사분계선은 남북 모두 많은 병력이 경계를 서고 있고, 각종 장애물과 지뢰 지역으로 인해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당국은 상황을 관리하기 급급했고, 그는 운동 경험이 있는 일반 탈북민으로 일상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일년 남짓 만에 남에서 북으로 월경을 했고 우리 군은 또다시 경계에 실패했다.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친 우리 군 당국의 무능보다도 더 엉성하고 염려스러운 것이 관련 해명이다. 정부의 발표가 아직도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어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지만,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발표는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졌다. 군당국은 경찰 등과의 협조를 거쳐 면밀한 조사 후에 정리된 발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만 조사하고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단정했다. 그 짧은 시간에 월북자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정확한 활동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앞으로도 며칠이 더 걸릴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려서 북으로 간 것 같다는 설명 역시 근거가 약하다. 탈북민의 생활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정착한 지 일년 남짓한 탈북민은 그렇지 않다. 초기 정착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월세와 일시금으로 약 2000만 원 가까운 돈이 1년 사이에 나누어 지급된다. 이 기간이 지났다면 생활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이러한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일까지 했다면 최저임금을 받았어도 합계는 월 300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가족이 있으면 모를까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돈이다. 혹시라도 용공 혐의가 문제될 것이 두려워 급한 대로 생활고 핑계를 찾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월북자를 북측에서 북한군 3명이 데리고 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는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코로나 19 방역을 이유로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이번에는 지상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바로 북측으로 데리고 간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북한의 코로나19 공포증을 생각할 때 적어도 수십 미터 밖에서 심문하고 방역복을 착용한 군인이 데리고 갔어야 정상이다.

우리 군의 대응은 과거 에밀 졸라가 고발했던 정반대의 상황으로 또 다른 `드레퓌스`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정부 임기말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사실관계의 면밀한 확인 이전에 적당히 둘러대며 진실을 호도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든다. 연초부터 탈북민 월북 문제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과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커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개설될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부와 공무원은 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이번 군 당국의 설명과 같이 너무 성급하고 엉성한 발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이 만들어지고, 국민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 생겨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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