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선은 1955년 종점인 장항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금의 장항선은 더 이상 `장항선`이 아니다. 2008년 군산선의 대야역·익산역 구간이 장항선에 편입돼 종점이 익산역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종점만 변동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추진한 직선화, 복선화 여파로 일부 구간은 철길이 바뀌었고 폐역이 속출했다. 사람과 물산의 이동처인 역사가 없어지며 주변 풍광도 쇠퇴했다. 마치 4대강 사업으로 강의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은 것 마냥.
흔적과 기억으로만 남은 옛 장항선 모습이 최근 한 문인의 역작으로 복원됐다. 시인인 이심훈 전 아산교육장이 쓴 `느림과 기다림의 장항선 인문학 기행`이다. 2013년 시집 `장항선`도 펴낸 이 전 교육장은 장항선과 인연이 깊다. 서천의 구 판교역을 지나는 장항선 기차의 아련한 기적소리와 더불어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집 장항선이 느림과 기다림으로 상징되는 장항선의 세계로 인도하는 입문서라면 이번 책은 장항선에 관한 박물지이자 심화서이다. 세교, 학성, 오가, 화양, 원죽, 옥마, 간치, 주산, 임피 등 지금은 사라진 역들의 이야기도 품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 장항선처럼 느리게 가고 느리게 생각할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적었다. 올해는 천안역이 출발역인 장항선의 개통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는 6월 장항선 개통 100주년에 맞춰 장항선으로 이웃한 지역들이 함께 뜻 깊은 일들을 벌여보면 어떨까? 지난 100년간 서민들의 애환이 눅진하게 스며 있는 장항선은 가히 `장항선 학교`라고 부를 만큼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을 모으는 일이 미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