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아이에게 전래동화를 읽어 줄 때면 호랑이만큼이나 무섭게 나오는 동물은 없는 것 같다. `해님 달님`의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호랑이어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어머니를 협박하다 오누이까지 죽음 직전의 상황까지 쫓는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에서는 팥 농사를 짓는 할멈에게 갑자기 나타나 할멈을 잡아먹으려다 자라, 지게, 맷돌, 알밤, 멍석의 도움으로 쫓겨난다. 서양의 아이에겐 늑대였을 것 같고, 조선시대 아이에게는 천연두를 의미하는 `마마`와 함께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라는 `호환(虎患)`은 제일 무서운 존재였을 것 같다.

한의학에서도 호랑이는 그 무서움만큼이나 통증이 심하거나 치명률이 높은 질환에 이름이 주로 사용됐다. 통풍(痛風)은 백호역절풍(白虎歷節風)이라고도 했다. 마치 호랑이가 무는 것처럼 여기저기 관절을 돌아다니면서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그만큼 통증이 매우 심한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범이 우는 것과 같이 몹시 아프기 때문에 백호풍(白虎風)이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전염병 중 콜레라를 의미했던 호열자(虎列刺)에도 호랑이 이름은 들어간다. 이는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알고 보면 콜레라(Cholera)의 중국 표기인 호열랄(虎列剌)을 음역하는 과정에서 랄(剌)자를 자(刺)자로 잘못 표기된 것이 더 일반화된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호열자가 콜레라의 음을 빌린 것이지만 호랑이에게 물릴 정도로 아픈 한자로 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줄여서 `호역(虎疫)`이라고도 했다. 1821년 순조 21년 8월 평안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이듬해 두 해에 걸쳐 전국을 휩쓸었으며 죽은 사람 수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인구가 천만 내외였다고 하니 엄청난 수이다. 1946년 광복 후 귀국한 사람들로 인해 콜레라는 다시 퍼지게 되는데 이 해 콜레라로 5만7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 이 중 3만6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서운 질병에만 호랑이 이름이 붙는 것은 아니다. `병풀(Centella Asiatica)`의 다른 이름은 `호랑이풀`인데 이는 상처를 입은 호랑이가 풀 위에서 뒹굴어 상처를 치료한다는 이야기에서 연유됐다. 동남아 지역 습지가 원산지로 한국에서는 제주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재배되고 있는데 화장품의 원료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식물이다. 병풀 추출물 중 마데카소사이드와 센텔라정량추출물(TECA)은 피부 재생에 도움을 주거나 항염증 작용을 가지고 있다. 병풀의 학명의 앞, 뒤 글자를 따서 시카(CICA)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흉터,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어서 의약품, 화장품으로 많이 각광받는 소재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친숙했던 호랑이도 일제강점기부터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했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가 기록이 남은 남한 최후의 야생 호랑이였다고 한다. 현재 한국호랑이는 전 세계에서 1000여 마리 정도만 남아 야생동물 보호 협약(CITES)에 멸종 위기 1종으로 지정된 희귀동물이 됐다. 단군신화부터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까지 너무나도 친숙한 동물 호랑이가 이제는 전래동화에서나, 뉴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작년 5월 대전 중구의 대전오월드에서도 한국호랑이 `미령이`가 태어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옛날엔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재(三災)를 쫓는다고 하여 호랑이 그림을 부적으로 만들어 문에 붙이거나 했다고 한다. 질병으로 치면 몸의 열병, 중풍 같은 풍병, 습한 기운 때문에 생기는 수종으로 온갖 잡병이 다 이에 속했다고 한다. 올해엔 이 호랑이 기운을 빌어서라도 3년째에 돌입하는 코로나 19 팬데믹 시국이 진정되기를 빌어 본다.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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