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야당 대선 후보와 그 가족, 야당 의원과 언론인까지 무차별 통신조회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수처는 지금까지 윤석열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 씨는 물론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보좌진 84명, 언론인 140여 명, 이들의 가족과 변호사 등 200여 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통신자료와 공수처의 `황제 에스코트`를 보도한 기자의 통신내역도 들여다봤다. 뿐만 아니라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소속 한국인 기자의 자료까지 조회했다고 한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범죄 행위 입증을 위한 정보수집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공수처의 이번 조회는 야당과 보수 언론을 겨냥한 것으로 `야당 사찰`, `언론 사찰`로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국민의힘 의원의 80%가량이 조회 대상이 됐는데 여당 의원이나 여권 관계자가 포함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공수처의 칼끝이 야권과 언론을 겨누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자 검찰 개혁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기관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공수처장 임명 당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중립성과 독립성이라 생각한다"며 "정치로부터의 중립, 기존 사정기구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공수처가 하는 짓을 보면 이게 과연 중립이고 독립인지 의심스럽다. 집권 여당이 거대 의석을 앞세워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수처법을 밀어붙인 이유가 뭔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출범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불법 채용 의혹을 받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기소한 것 밖에 없다.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서는 구속 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 즈음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며 공수처의 무능을 시인한 적이 있다.

이런 아마추어가 결국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공수처의 통신 조회를 보고 있자면 과거 안기부의 민간인 사찰이나 검찰의 불법 도청이 오버랩된다. 검찰 개혁을 위해 태어난 공수처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존재 이유를 의심하지 않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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