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선주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래간호팀
손선주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래간호팀
얼마 전 외래에 와서 담소를 나누고 진료도 잘 보고 간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중환자실에 이실 돼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자 보호자가 교수님 면담을 하러 왔다. 그 순간엔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하는 수 밖에…. 교수님 면담 후 보호자는 정신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까지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호전된 환자는 휠체어를 탄 채 보호자와 외래진료를 받으러 왔다. 이후 재활에 혼신을 다한 환자는 요즘 보호자 도움 없이 혼자 온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말이다. 누군가는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활짝 웃는 모습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가끔은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필자의 건강함에 자만심은 없었는지, 아침 출근길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잘 안 놀아요." 엄마는 얼굴이 사색이 돼 있고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신경외과를 방문했다. 아기는 CT촬영과 엑스레이(X-Ray) 촬영을 진행했고, 괜찮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께서는 "맞벌이 하는 딸을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데 순간 이런 일이 생겼다"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는 숨이 턱까지 차 중간에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반면 졸린 눈 비비며 하루하루 묵묵히 버텨내는 이들도 있다. 필자도 어느 덧 간호사로 살아온 시간이 30년이 지나갔다. 동료 간호사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이 아직도 적성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 했더니 "너 간호사 적성 맞아" 하며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삶의 순간순간 어려움을 함께 경청해주고 힘이 돼주는 든든한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 역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한 순간들이다.

돌이켜보면 열정 가득했던 20대는 풋풋했지만 조금은 어설펐다. 30대는 워킹맘으로 쌍둥이 육아에 지쳐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으며, 40대는 선배간호사로 후배간호사들에게 상처는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50대에 이르고 나서야 어느 순간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로움이 생겨 진정으로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됐다. 또한 가슴 아파하고 공감하게 되니 화가 나는 일에도 웃게 되고 하루하루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신경외과의 하루는 참 길고도 짧지만 그 하루를 신나게 살아가는 것, 건강하게 가슴 벅차게 살아가는 것,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손선주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래간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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