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나를 위해(김동진 지음)=일흔 청년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느슨하게 나이 드는 즐거움을 전한다. 저자는 퇴직 이후 지난날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기로 다짐했다. `과거를 자랑하지 말 것`, `꾸준히 학생으로 남을 것`. 이 두 가지를 노년을 즐기는 자세로 삼고 사진과 글, 여행, 세 가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10여 년간 묵묵하고 꾸준히 써온 600여 꼭지의 글을 고르고 골라 담백한 사진들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40여 년 동안 회사와 가족을 위해 무소처럼 달려온 세월을 뒤로 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저자가 오늘을 사는 방식을 만나보자. 21세기북스·264쪽·1만 7000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지음·정지인 옮김)=이 책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좇아간다. 어느 순간 독자들을 혼돈의 한복판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관계들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이 놀라운 영감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 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함과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성찰에 관한 철학적 해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곰출판·300쪽·1만 7000원

◇두고 온 것(강영숙 지음)=제18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어른의 맛`으로 문을 여는 이 책은 저자가 발표해 온 10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단순히 현실을 유리 파편에 비추듯 날카롭게 그려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와 개인적 불행을 겪은 인물들이 마주한 폐허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이를 통해 재난 `이후`에 주목하며 더욱 넓어진 작품세계와 지평을 선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금 뒤흔들리는 세계에서, 재난이 또 다른 재난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도착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의미 깊게 읽힌다. 단정한 듯하면서도 날선 문장들은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다. 문학동네·264쪽·1만 3500원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임솔아 지음)=저자의 20대 중반부터 30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책은 깊고 단정한 문장을 신중히 건네며 일상 속 모순을 응시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저자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이 들며 변화해 왔다. 그동안 `나와 닮은 존재를 새기려` 애썼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저마다 다른 희미한 존재들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를 통해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 눈송이 같은 이들과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 진심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시점상 역순으로 배치돼 있는 소설들을 함께 읽으며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우리 각자의 어제, 그리고 미래의 내게 전해질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문학과지성사·284쪽·1만 4000원

◇오히려 최첨단 가족=멈추지 않는 성장을 요구하는 시대, `좋은 가족`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능력 있는 배우자, 희생하는 부모, 그에 보답하는 말 잘 듣고 성적이 훌륭한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라면 좋은 가족일까? 이 책은 마흔에 은퇴한 남편과 가사노동을 내려놓은 엄마, 학교 공부보다는 친구들의 사랑과 인정을 위해 뜨개질과 요리를 하는 큰 딸,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절대 안 하는 고집스러운 작은 딸로 구성된 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 안에서 개인들이 자기다운 삶을 맏늘어가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지 풀어ㅗㅎ는다. 그러면서 구태의연한 가족관계로부터 발견해낸 진짜 효용과 쓸모를 이야기하고,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온전히 나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소유·288쪽·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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