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예전에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이던 방법 중 하나다. 일단 갓 들어온 어린 코끼리를 굵은 말뚝에 쇠사슬로 묶어 놓는다. 어린 게 처음에는 도망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코끼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참 시간이 흘러 성체가 된 코끼리를 다 썩어 가는 나무 말뚝에 새끼줄로 묶어놓는다. 그럼 어떻게 될까? 그래도 코끼리는 도망가지 않는다. 다 큰 코끼리가 얼마나 큰 괴력을 발휘하는지 본 적이 있는가?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다. 초가집도 쉬이 무너뜨릴 수 있는 코끼리가 왜 힘없는 새끼줄을 끊고 도망가지 않을까?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랜 탈출시도 끝에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 코끼리는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어차피 안 될 거란 생각에 지레 포기하고 만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한다.

학습된 무기력은 실패에 대한 좌절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이는 실패경험이 많아질 때마다 점점 커진다. 지금의 코로나19가 딱 그런 것 같다.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되자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캠을 켜지 않은 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제발 캠 좀 켜라고 닦달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다음 주에는 얼굴을 마주보면서 수업을 할 테니 말이다. 깜박 잊고 마스크를 안 한 채 밖에 나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집으로 되돌아오던 일도 이젠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 여전히 많은 수업은 비대면이며 확진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더욱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백신을 맞아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3차까지 맞아도 걸린다는데 할 말이 없다. 유난떠는 것 같지만 허망스럽고 두렵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정부는 또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 두 날 만큼은 마음 편히 보내나 했더니 물 건너갔다.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한 것이 벌써 2년이다. 이젠 다들 지친 것 같다. 이 속 터지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길어도 끝이 보이면 희망을 갖고 참는데 이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니 거기서 오는 막막함과 무력감이 우리의 일상을 짓누른다. 솔직히 이제는 될 대로 되란 생각마저 든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을 때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계속 놓여 있을 때 우리는 큰 공포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노력해도 결과는 그대로일 때 사람은 쉽게 지치고 포기한다.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은 우리가 그 동안 이뤄왔던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트리고 만다. 자포자기 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년에는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생길 것이다. 바이러스란 그런 식으로 수 만년을 인류와 공존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거센 파도일지라도 해안가 작은 모래 알갱이들을 만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우리의 강한 신념과 연대(連帶)를 통해 이 못돼먹은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새해에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믿음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제까지 잘 버텨왔지 않은가? 영화의 한 대사처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우리에겐 그럴만한 힘과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 원고를 마치며 새해 독자들의 가정과 직장에 건강과 화평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임진섭 배재대 실버보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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