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홍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표준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전종홍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표준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도 없다"라는 문장은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남긴 명언이다. 측정 없이는 어떤 관리도 불가능하고 개선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측정(測定)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수치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사실 인류 역사는 측정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최초의 측정 도구는 인체였고 그 오랜 역사는 우리에게도 `척`, `촌`, `뼘` 같은 단위로 남아 있다. 측정 기준을 정하는 것은 곧 권력이었고 권위와 위엄의 징표이기도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측정의 권력과 권위는 기록돼 있다. 그리스 태초신 중의 하나인 `크로노스`는 이름 자체가 `시간`이란 뜻으로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었고, 운명의 3여신 모이라이 중 한 명인 `라케시스`는 `측정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운명의 실의 길이를 측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인류의 측정 체계 대변화는 200년 전에 시작됐다. 인체를 기준으로 한 측정이 바뀌고 표준화가 시작된 시점이 이때였다.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으로 측정 단위 통일의 필요성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무려 100년의 논의를 거쳐 탄생한 단위가 프랑스의 metre(미터)였고, 이는 그리스어의 `측정`이란 뜻이었다는 점은 놀라운 우연이다. 그리고 겨우 200년 조금 넘는 기간을 거치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류의 여러 측정 체계가 표준화되고 통일돼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확산 속에서 AI의 성능과 품질을 측정하려는 시도들도 시작되고 있다. 측정이란 행위는 체계적인 측정 절차인 `검사`로 이어지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인 `평가`로 연결되며 나아가 다양한 특성들을 평가해 `품질` 관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화해야 할 사항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측정에 대해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능이나 행복, 자존감처럼 근본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것까지 측정하려 든다"는 `측정의 역사` 저자 비판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래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명언처럼 "측정 가능한 모든 것을 측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측정 가능하게 만들어라(Measure what is measurable, and make measurable what is not so)"라는 격려도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측정 가능한 대상일까 아닐까?

분명 지능이란 요소는 측정하고 평가하기 어려운 면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인류의 벗으로 더욱더 많은 영역에서 활용하며, 고위험 영역에까지도 안심하고 도입해 적용하려면 결국 측정하고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AI 시스템의 신뢰도는 몇 퍼센트이고, 설명가능 능력과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은 얼마나 보장 가능하다는 것을 측정하고 평가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국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공지능 성능평가와 테스팅을 위한 국제 표준화가 국제표준화단체인 IEC TC62와 JTC 1/SC 42에서 한국과 ETRI 주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무척 뜻 깊다. 인공지능의 성능, 품질과 신뢰성을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한 국제표준 개발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연구진은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인공지능의 실현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성능평가 프로세스를 확립하기 위한 후속 표준개발 활동을 펴 나갈 계획이다.

표준화된 측정 단위 미터법이 1차 산업혁명 확산의 기틀이 된 것처럼 인공지능에 대한 표준화된 평가 체계와 방법을 선도하며 신뢰 가능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열어보길 기대해 본다. 전종홍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표준연구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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