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지난 칼럼에서 일부 작가들은 창의력을 담보로 술과 친화적이라 짧게 언급했다. 그러던 차에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책세상)를 읽었다. 술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에게 치명적인 동시에 창조적 영감을 매개한 뮤즈, 절대적 여성들은 무수하다. 릴케, 니체, 프로이트에게 이 책의 저자 루 살로메는 단테의 베아트리체, 보들레르의 잔느 뒤발, 예세닌의 이사도라 던컨, 브람스의 클라라 슈만, 백석의 자야, 김유정의 박녹주 등과 비슷한 존재다.

책의 내용은 니체의 철학에 관한 내용이지만, 이 칼럼은 저자인 루 살로메에 얽힌 것이다. 니체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저술한다. 그리고 정신착란에 빠져 11년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나 죽는다. 뒤이어 스승인 니체에게 그녀를 소개한 후 셋이 함께 동거까지 한 파울 레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한 시기에 발간해 유명한 책이다. 하여 불행에 빠진 옛 연인을 이용해 먹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소설, 에세이, 문학평론, 논저 등 많은 글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저작보다는 당대 유럽의 숱한 지성들과 교감하며 사랑을 나눈 인물로 더 유명하다.

서재에 항상 살로메 사진을 걸어 두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후원한 프로이트의 말, "그토록 빨리 그토록 훌륭하게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은 만나 보지 못했다. 니체는 루를 악마라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이렇듯 그녀는 뛰어난 지적 재능을 소유했으며, 뮤즈이자 팜므 파탈의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부지기수다. 스물두 살 릴케는 열네 살 연상의 살로메를 만나 가없이 사랑했고, 그와 헤어진 뒤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 생애 최고의 걸작을 생산한다. 둘이 주고받은 편지는 릴케 사후 책으로 출간되며, 임종 자리에서도 그녀를 죽도록 보고 싶어 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여기서 비로소 만났지요?" 열일곱 연하의 살로메를 제자 레의 소개로 처음 만나 던진 니체의 낭만적이며 달콤한 이 표현은 너무나 유명하다. 니체는 그녀를 이 지상에서의 이상으로까지 칭송한다. 그는 존경은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당하고, 절망 끝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후 정신착란에 빠져 11년여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 죽는다. 릴케와 니체의 경우를 보고 사람들은, 그녀와 사랑하다 헤어지면 책 한 권은 쓴다고 할 정도였다.

살로메를 가까이 한 남자들에게 그녀는 초월적 기표다. 그런 까닭에 천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인 동시에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누구나 사랑했으나 누구의 구속도 허락 않는 자유롭고 분방한 영혼이었다.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사악한 팜므 파탈의 초상, 그러나 여러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유로운 영혼, 순전한 자의지로 자신의 삶을 산 주체적 여성이란 점은 확실하다. 이런 살로메와 대조적으로 우리에게는 나혜석이 있다. 혜석 또한 살로메 못지않은 재능을 소유한 매우 진보적이며 선구적인 여성이다. 다만 다른 점은 사회를 비롯한 친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혜석은 파리에서 3·1 운동 민족대표 중 한 사람 최린을 만나 잠시 사랑한다. 그 이유로 이혼당하고, 촉망받던 화가이자 문필가에서 행려병자로 무연고 병동에서 죽는다.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와 관습에 저항하며 주체적 자아로 홀로 서고자 했으나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냉대와 비난, 그저 사악한 요부, 화냥년일 뿐이었다. 근대 이후 자아를 추구하는 여성이 등장하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공포와 매혹, 증오와 매력을 동시에 투사한 모순적 이미지가 팜므 파탈이다. `김치녀`, `된장녀` 등은 서양의 팜므 파탈과 유사한 역사 문화적 현상이다. 다른 점이라면 매혹을 지우고 혐오의 이미지를 덧칠한다는 것이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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