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날카로운 기계음을 내며 3D프린터의 프린팅 베드가 레일 위에서 앞뒤로 움직인다. 섭씨 200도가 넘게 달궈진 히팅블록은 동그랗게 감겨있는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천천히 빨아들이며 좌우로 바쁘게 움직인다. 안정적인 출력을 위해 섭씨 60도로 유지시키고 있는 프린팅 베드 위엔, 필라멘트가 좁은 노즐로 녹아 빠져나오며 등고선을 그리듯 한층 한층 쌓인다. 출력을 시작한 지 약 96시간.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출력물은 고비사막에서 발굴해 3D스캔한 실물 크기의 공룡 머리뼈다!

지질박물관 중앙홀에 들어서면 거대한 두 마리의 공룡이 달려 나올 듯 서 있다. 몸길이 5m가 넘는 갑옷공룡 에드몬토니아와 이를 뒤쫓는 12m의 티라노사우루스. 이들의 수백 개가 넘는 초콜릿 빛깔 골격은 표면 질감과 깨진 균열까지 그대로 드러나 있어, 마치 후기백악기 지층에서 화석을 그대로 꺼내 세운 것만 같다. 이것은 실물화석의 정교한 `복제품`이지만, 그 제작 원리는 초등학교에서 찰흙과 석고로 조개껍데기를 본뜨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찰흙보다 부드럽고 정교한 실리콘으로 틀을 만들고, 이 틀에 석고 대신 더 가볍고 튼튼한 합성수지를 채워 굳힌 것이 차이일 뿐. 여기에 화석의 색과 질감에 가깝도록 전문가의 손길로 칠을 해주면, 방금 실험실에서 깔끔하게 처리작업을 마친 것만 같은 뼈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최근 이런 `전통적인` 복제 방법에 변화가 일고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대두되는 3D 스캐닝과 3D 프린팅 기술은 더욱 저렴해진 하드웨어의 보급과 더불어 제조, 건축, 예술, 의료, 심지어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각종 연구 분야와 박물관에서도 그 활용을 모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원본화석 표면에 실리콘 액을 발라 틀을 만들던 방법과 달리, 3D 스캔은 화석에 직접 접촉 없이 레이저나 LED 광원을 비춰 외형을 읽어 들이고, 이것을 입체적인 디지털정보로 만든다. 원본 손상 우려가 없으면서도 무한정 복제 가능한 `디지털 실리콘 틀`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자료 특성상 수정 편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3D모델을 다양한 종류의 3D프린터에서 원하는 크기로 원하는 수량만큼 찍어낼 수 있다. 다만, 높은 정밀도의 대형 출력물은 아직까지 생산비용이 많이 들며, 출력시간 또한 상당하다. 그럼에도 자연사박물관에서 3D스캔과 프린팅의 응용 사례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자연사박물관은 `트릭스(Trix)`라는 별명의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을 3D스캔한 뒤, 유실되거나 손상된 부위를 디지털 복구하고 실물 크기로 출력해 전체골격을 복원해냈다. 영국 수정궁에 전시된 빅토리아시대의 유명한 기념물인 메갈로사우루스 턱이 파손됐을 때도, 3D스캔자료와 3D프린터가 없었다면 온전한 복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2021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박물관 같은 문화 교육시설의 운영과 활동에도 변화를 가져와, 대면 현장활동이 비대면 가상활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질박물관은 가정과 손 안에서 전시물을 입체적으로 관찰하고 손쉽게 내려 받아 출력할 수도 있는 내일을 위해, 다양한 보유 지질표본에 대한 3D스캔자료 구축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기다려지는 내일은, 전시대에 얼굴을 파묻고 집중하는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다시 즐거운 소란함으로 가득한 박물관이 아닐까?.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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