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안전과 안심 두 단어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와 쓰임새가 많이 다르다. 사전적으로 안전은 위험성이 없는 `물리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안심은 걱정이 없는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안전의 정도는 과학적인 근거를 기준으로 계량화해 객관적인 기준을 정할 수 있지만 안심의 정도는 각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과학적으로 안전기준을 충족해도 소통이 부족하면 대중은 안심할 수 없으며, 안전기준에 미흡한 것을 안심해 방심하게 되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안전과 안심은 상호 보완하면서 과학적 기준과 심리적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비로소 진짜 `안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안전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리스크(Risk)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리스크는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미래에 발생 가능한 손실과 위험을 뜻하는 영단어다. 측정과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험과 구별된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인류가 얻을 수 있는 혜택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리스크의 문제는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래된 사회적 딜레마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심리학자인 피쉬호프(Fischhoffs)는 1978년 발표한 논문에서 자전거타기, 등산, 수영, 스키, 백신, 방부제, 음주, 흡연, 엑스레이 촬영 등 30가지의 활동(기술)을 리스크와 혜택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사회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리스크와 혜택이 균형에 도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첫째, 리스크의 수용성은 혜택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과학기술로부터 얻는 혜택이 증가하면 대중은 훨씬 더 큰 리스크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평범한 등산보다 조금 더 큰 만족감을 위해 훨씬 리스크가 큰 암벽 등반을 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대중은 동일한 혜택을 얻을 때 자발적으로 선택한 활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약 천 배 정도 더 큰 리스크를 수용한다고 한다. 흡연으로 인한 리스크가 식품에 포함된 방부제보다 훨씬 더 높지만 흡연은 스스로 선택했으므로 받아들이는 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방부제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셋째, 동일한 리스크가 다수에게 노출되는 공공성이 있을 경우 리스크의 수용성은 낮아진다. 피쉬호프 연구의 메시지는 대중은 리스크를 받아들일 때 `물리적인 안전`보다 사회 속에서 `심리적인 안심`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원자력기술을 피쉬호프의 연구결과에 대입해보자. 첫째, 원자력 기술이 주는 혜택인 저렴한 전기료가 일반 대중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둘째,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셋째, 원자력 기술은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 원자력 기술은 태생적으로 리스크에 대한 대중의 수용성을 얻기에 까다로운 기술인 것이다.

최근 국민들은 기후변화 위기로 인해 원자력의 필요성을 점점 인식하고 있지만 안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해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안전의 `물리적인 상태`를 측정해 괜찮다고 하지만 심리적인 안심의 잣대로 바라보는 국민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다른 말과 사고를 하는 꼴이다. 앞으로 2050년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력 기술이 주는 혜택은 점차 알려질 것이며 리스크의 수용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원자력 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물리적인 안전`의 언어보다는 `심리적인 안심`의 언어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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