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살아보니 사랑이더라 (길재섭 지음 / 미디어줌 / 284쪽 / 1만 8000원)
실향민 부부 삶 통해 본 대전 미시사(史)
험난한 인생 여정서 얻은 교훈·사랑 담아

매일 60억 개의 삶과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펼쳐지지만,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사례는 극소수다. 하지만, 역사에 남겨지지 않은 개인의 기록은 때때로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생생히 겪은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 오며 체득한 노하우와 지혜들이 가득한 보물창고다.

이 책은 격랑의 세월을 살아온 저자의 부모님, 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해방과 한국 전쟁을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로, 삶의 모든 장면에서 고집스럽도록 성실히 살았다. 저자의 부모님인 두 주인공은 불과 두 달 차이로 각각 38선을 넘어 내려와 개성 피란민수용소에 잠시 머무른다. 부산으로 남하한 뒤엔 각자 어딘가에서 영도다리가 올라가는 것을 매일 바라봤다. 카투사로 복무한 홍주는 미군과 싸우고도 가까스로 한국군으로 전출되지 않았고, 대전 중앙시장 대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뒤 차린 임시 가설시장에서 오히려 장사가 잘 되기도 하는 희한한 광경도 마주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화미는 교회 성가대 생활을 하던 중 사회인 합창단을 만들겠단 꿈을 실행에 옮기며 `솔모음 합창단`을 창단했다. 소박하게 출발한 이 합창단은 오늘날 지역 클래식 활성화에 힘쓰는 `대전시립합창단`의 토대가 된다.

어느덧 80대가 된 두 주인공은 해방과 전쟁,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고향을 떠난 대부분의 월남 피란민들과 비슷하게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웠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회고한다.

해방 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각각 월남해 힘겹게 살아 온 부모님의 삶을 엮은 이 책은 이들의 삶이 때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엔 잔잔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부모님이 들려준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하는 `팩트 체크` 작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두 주인공의 여정과 관계가 있는 역사의 여러 장면들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책에 덧붙인 것이 그 흔적이다. 부산 영도다리와 파독 간호사 이야기, 대전 중앙시장 대화재 등 지역을 뒤흔들었던 대사건과 상징물 등에 대한 추가 설명들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이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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