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원장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현택환 단장은 나노화학 분야의 세계 최고 연구자로 평가받는다. 이 연구단에는 나노소재 화학자 현 단장 외에도, 전기화학에너지 공학자 성영은 교수, 유연전자소자 개발자 김대형 교수, 영상의학자 최승홍 교수 등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 기술인 나노입자 기술을 활용해 정보전자, 에너지, 생명의료 등에서 기초와 응용을 망라하는 기술혁신을 이뤄 내고 있다. 나노입자는 QLED와 같은 첨단 디스플레이는 물론, 모더나와 화이자가 개발한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에도 활용된다. 게다가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도 나노촉매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호기심의 대상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 전문지식을 탐구한다. 영어 단어 `science`를 `분야별로 전문화된 학문체계`라는 뜻의 `과학(科學)`으로 번역하는 이유다. 이 단어를 만든 일본의 계몽사상가 니시 아마네는 세상의 통일된 진리를 궁구하는 동양 철학과 달리, 분야별 고유의 패러다임을 가진 서양 학문 science의 중요한 특징을 꿰뚫어 본 것이다. 당시 과학은 우주, 물질, 생명 등의 본질을 밝히는 철학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 근대과학의 지식체계가 형성됐다.

그런데 과학지식이 인간에게 유용하게 응용되기 위해서는 분야 간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게 됐다. 인류사에 변혁을 일으킨 산업혁명은 근대과학에서 발견된 지식을 이용한 기술혁신으로 촉발됐다.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으로 동력을 만들어 방직기 및 철도 등에 활용하여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과 혁신적인 대량 물류가 가능하게 돼 1차 산업혁명이 폭발했다. 그리고 19세기 전자기학, 화학 연구가 기반이 된 2차 산업혁명은 전기, 석유, 철강, 자동차 등의 제품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3차 산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20세기 말의 정보통신혁명은 컴퓨터와 통신기술을 이용해 지식과 정보를 무한한 가치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산업혁명은 여러 분야의 과학지식을 집약해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과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기술혁신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읽어 일찍부터 과학과 기술혁신의 연계에 투자한 나라들이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이었다. 한편 우리나라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과학기술 진흥과 수출산업 육성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했으니 선진국들과는 100년 이상의 큰 시간 격차가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수십 년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 실체와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진행 속도와 파장만큼은 앞선 산업혁명들에 비교할 수 없게 크다. 과거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적 활동을 기계로 대체하려 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정신적 활동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로써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직업들이 컴퓨터로 대체되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ICT 선진국으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 개발에 준비가 되어 있다. 과거 세계사적 발전에 무지하여 1, 2차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못했던 실수를 교훈 삼아, 현재의 시대정신을 통찰해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분야별로 발전해 온 과학의 성과를 기술혁신으로 연계하려면 여러 분야의 지식을 활용하는 융합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IBS 나노입자 연구단의 다분야 융합연구 방식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다양한 배경의 우수인재를 한데 모아서, 분야 간 장벽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게 하여 집단·융합연구를 통한 상승효과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하면,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서 인류문명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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