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최근 기후위기로 건물, 교통, 산업, 폐기물 등 다양한 분야의 온실가스 저감 등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노력이 촉구되고 있다. 특히, 건물 분야에서는 그동안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대응해 왔고, 이제는 기존 건물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부처에서는 발 빠르게 대응하며 공공건축물에 대한 그린 리모델링 의무화 등의 정책 및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민간의 움직임은 저조한 상황이다. 그 이유로 리모델링이 신축에 비해 쉽지 않아 차라리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적으로 신축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검토를 통해 리모델링 기술이 태생적으로 신축 기술에 비해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기술의 쓰임과 효율성은 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도로를 포장할 수 없거나 도로가 거의 포장되지 않은 사회에 자동차가 주어진다면 본연의 속도를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구성도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농지 구획정리 없이 트랙터 등이 효율성을 갖지 못하는 것, 인건비가 현저히 작은 사회에서 노동집약적 공법이 기술집약적 공법에 비해 상대 우위에 서는 것 역시 적절한 예일 것이다. 즉, 기술은 인접기술과의 연계는 물론, 사회인프라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기술의 등장과 활용은 사회적 관성에 부딪힌다. 중세 말기 성벽을 뚫을 수 있는 화약이 동양에서 전달된 후에도 많은 유럽 도시들은 성벽이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방어 전략을 고안하기보다는, 성벽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겹겹이 쌓아 견고하게 할 뿐 아니라 성벽을 독특한 형태로 쌓아 포탄과 이루는 각도를 조절하고자 했던 것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건축 거장 중 한 명인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프랑스에 뻬삭(Pessac)이라는 마을에 기계식 시공, 모듈 공법, 공장식 부재 생산으로 공동주택을 짓고자 했다. 그는 더 빠르고 더 저렴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당시 기술에 비해 2배 이상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다. 현재에는 당연시되고 더 효율적인 그 기술들을 적용했음에도 말이다. 실상은 각 부재를 생산할 충분한 공장이 부족했고, 기술자도 없었다. 그것들을 실어나를 도로는 비포장에 구불구불 했던 것이다. 시공자들도 그 기술에 익숙치 못했던 것 역시 당연하다. 우리의 건설 기술 역시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몇 백년 동안 신축건물을 중심으로 기술을 발전해 왔지 기축건물을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몇몇 특별한 문화재급 건물은 제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공사 현장도 기계식, 공장식 시공보다는 노동집약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하에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역시 몇몇 국가 규모의 대규모 건물은 논의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이 바뀌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래로 신축보다는 리모델링으로, 짓는 것 보다는 운영으로 말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지원 및 연계 기술, 관련 법·제도 및 정책 방향이 과거 지향적인 것이 문제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리모델링 보다는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신축이 더 경제적이고 빠르고 쉽다. 하지만 현재에 머물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대규모 철거를 통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 보다는 그린 리모델링을 위한 다양한 기술개발은 물론,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근본적 자세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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