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장소를 살펴보면, 교차로와 교차로 내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가 전체 교통사고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역시 최근 몇 년간 큰 변화가 없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총 22만 9600건의 교통사고 중 약 절반인 11만 4425건의 교통사고가 교차로와 교차로 내 횡단보도 근처에서 일어났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이 높은데, 교통사고는 교차로나 횡단보도 부근에서 절반가량이 발생하므로 결국 보행자 사망사고도 그러한 장소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은 우회전 후의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녹색이라도 보행자가 없다면 정지하지 않고 통행 가능하며, 교차로 우회전 시 서행 의무는 있으나 일시정지 의무는 없다. 즉, 우회전 차량의 경우 연속적으로 두 개의 횡단보도를 만나게 돼 보행자와의 충돌사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규제로서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법적 미비로 인해 교차로에서 우회전 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격하는 사고가 교차로 보행자 사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교차로 보행자 사고는 총 1만 9059건이 발생했는데, 그중 18.1%인 3458건이 우회전 사고이며, 교차로 횡단보도내 사고로 16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3349명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교통안전 선진국들의 사례는 어떨까. 차량의 진행방향 신호가 적색이고 우회전 후 보행자 신호가 적색인 경우 유럽연합(EU)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우회전을 아예 금지하고 있다. 같은 경우에 대해 미국과 일본에서는 운전자에게 일시정지 후 우회전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교차로에서의 보행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규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교차로 등에서 우회전 차량으로 인한 보행자 사망사고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법 개정을 통해 여타 교통선진국들과의 교차로 내 보행자 안전수준의 차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즉, 교차로에서 우회전 직후 보행신호가 녹색이면 무조건 일시정지하고, 보행자 등의 안전여부를 확인한 후 서행하도록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법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 보행자들의 안전수준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운전자들도 우회전을 할 때는 언제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부모, 우리 아이가 길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우회전 핸들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조호성 손해보험협회 대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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