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성 손해보험협회 대전센터장
조호성 손해보험협회 대전센터장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010년 5505명에서 지난해 3081명으로 44% 감소했다. 하지만 OECD 산하의 국제교통포럼(International Transport Forum)의 인구 10만 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분석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40개 회원국 중 25위로 여전히 중하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에서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명 중 4명 정도로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데, 이러한 상황은 최근 몇 년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교통사고 사망자 중에서 보행자가 많은 것이 대표적인 후진국형 교통사고 유형이라고 말한다. 종합하면 비록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감소하고는 있지만 사망자 중에서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아직까지는 교통안전 측면에서 후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장소를 살펴보면, 교차로와 교차로 내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가 전체 교통사고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역시 최근 몇 년간 큰 변화가 없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총 22만 9600건의 교통사고 중 약 절반인 11만 4425건의 교통사고가 교차로와 교차로 내 횡단보도 근처에서 일어났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이 높은데, 교통사고는 교차로나 횡단보도 부근에서 절반가량이 발생하므로 결국 보행자 사망사고도 그러한 장소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은 우회전 후의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녹색이라도 보행자가 없다면 정지하지 않고 통행 가능하며, 교차로 우회전 시 서행 의무는 있으나 일시정지 의무는 없다. 즉, 우회전 차량의 경우 연속적으로 두 개의 횡단보도를 만나게 돼 보행자와의 충돌사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규제로서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법적 미비로 인해 교차로에서 우회전 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격하는 사고가 교차로 보행자 사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교차로 보행자 사고는 총 1만 9059건이 발생했는데, 그중 18.1%인 3458건이 우회전 사고이며, 교차로 횡단보도내 사고로 16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3349명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교통안전 선진국들의 사례는 어떨까. 차량의 진행방향 신호가 적색이고 우회전 후 보행자 신호가 적색인 경우 유럽연합(EU)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우회전을 아예 금지하고 있다. 같은 경우에 대해 미국과 일본에서는 운전자에게 일시정지 후 우회전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교차로에서의 보행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규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교차로 등에서 우회전 차량으로 인한 보행자 사망사고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법 개정을 통해 여타 교통선진국들과의 교차로 내 보행자 안전수준의 차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즉, 교차로에서 우회전 직후 보행신호가 녹색이면 무조건 일시정지하고, 보행자 등의 안전여부를 확인한 후 서행하도록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법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 보행자들의 안전수준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운전자들도 우회전을 할 때는 언제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부모, 우리 아이가 길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우회전 핸들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조호성 손해보험협회 대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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