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목 서울지사 차장
백승목 서울지사 차장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은 유권자들 앞에 넙죽 큰절하며 표심을 자극한다. 평소에는 어디서 무얼 했는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가 주인`이라며 납작 엎드려 머슴임을 자처한다.

이제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고, 새해도 한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어느 순간 또 불쑥 큰절 올리는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큰절 유세`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국민을 향해 갑자기 사죄의 큰절을 올리면서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주로 보수 야권에서 행해져 온 대목과 대비돼 관심을 끈 모양새다. 큰절하면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황 전 대표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대로 가면 쉽지 않다"며 종로 15개동을 돌며 `큰절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약 20%p차의 대패였다.

집단 큰절 사례도 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TK)은 이른바 `친박 공천`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공천 파동으로 민심이 들끓었다. 그러자 "회초리로 때려 달라"며 12개 지역구 후보들은 단체로 큰절을 올렸다. 그러나 개표 결과 4개 지역구에서 참패했다. 보수의 텃밭이라 불리는 TK로선 처참한 패배였다.

홍준표 의원 역시 지난 2018년 자유한국당 대표로 6·13 지방선거를 이끌 당시 부산을 직접 찾아 큰절로 지지를 읍소했다. 다만 결과는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승리였다.

안철수 전 의원도 지난해 1월 독일과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면서 김포공항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지지자를 향해 큰절을 했다. 그럼에도 안 전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은 최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에 머무르고 있다. `큰절=불리한 판세`라는 통념이 자리잡게 된 전례들이다.

큰절은 상대에 대한 숭배와 복종의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경계해야 할 행동으로 치부되는 것 같은 묘한 아이러니가 스며든다. 결국 정치인의 큰절은 `무조건 정권을 읍소`하는 모양새로, 결코 국민이 `흔쾌히 받아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 아닐까.

백승목 서울지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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