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C형, 2021년도 달력이 덩그러니 한 장만이 걸려있습니다. 올해도 코로나 그물망에 촘촘히 걸려 허둥지둥 넘어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C형, 우리 사회초년생 새내기 시절, 술잔 부딪치며 직장 상사를 안주삼아 속풀이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곤 다음날 언제 그랬듯, 상사에게 살포시 커피 타 드리곤 했지요. 유독 저한테만 나무라셨던 상사분이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말도 안한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용기를 열심히 일했던 생각이 납니다. C형, 한 달 전에 80을 훌쩍 넘기신 아버님 같은 그상사분과 식사를 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뵙는데도 옛 얘기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호랑이 같았던 그 분이 남들한테는 저에 대해 좋은 모습만 얘길 해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란 걸 깨닫는 시간였습니다. 올해 C형은 특히 술자리에선 불평불만이 많았지요. 왜 대전은 대통령을 한번 못 만드느냐, 왜 대전에는 원로 다운 원로 분이 안 계시느냐. 대전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말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충청도 사람들 부모들은 자식을 군대 보낼 때 절대 제일 앞에도 서지 말고 제일 뒤에도 서지 말라고 하는데, 경상도는 짤막하게 씩씩하게 잘 갔다 온나 한다며 씁쓰레 웃음짓던 생각이 납니다.

C형, 제가 저의 선친 얘기를 잘 안 하곤 하는데 C형한텐 곧잘 한 거 같습니다. 1926년생이신 저의 선친은 일제 강점기에 강경상고를 다니시고 졸업 후 약관의 나이에 농협에 입사했지요. 당시에는 최고의 직장이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선친이 정년하던 55세에 직책이 대리였어요. 퇴직하시는 날 지인분들이 자네 부친은 공자 같은 분이라고들 했습니다. 늘 아버지 주위엔 소위 잘 나가는 동창, 선·후배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C형, 지난 주엔 충남대 의과대학에서 2021년도 추모제를 한다고 유가족들을 초청했었어요. 제 선친은 독실한 유교 신봉자셨는데, 의과대 학생들을 위해 해부실습용으로 자신의 신체를 기증했지요. 그게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운명하시고 3년이 지나서야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추모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아들에게 나도 할아버지처럼 해달라고 미리 유언을 남겼습니다.

C형, 올해 대전문화예술계도 코로나 정국에도 많이 분주했던 거 같습니다. 올 초부터 뜨겁게 달궜던 시립극단과 오페라단 설립이 해를 넘길 거 같다는 보도도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온 신문 언저리에 있는 핫한 뉴스를 봤습니다. `을유해방기념비 제자리 찾기까지 잊혀가던 `대전의 상징` 건립 75년. 이전 50년 맞아 부활` 제목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을유해방기념비에 대해 알게 된 건 지난해 아는 선배로부터 `회의가 있으니 무조건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부터입니다. 대신고 역사반 학생들이 을유해방기념비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인다는 내용였습니다. 평소 보문산에 자주 가곤 했는데 이 기념비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 때 알게 되었고, 비석의 글도 상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1946년 광복 1주년을 기념코자 시민의 성금으로 대전역에 세워져 있던 기념비였습니다. 열정적인 학생들의 당위성이 통해서인지 시민사회와 의회, 정치인들까지 가세하고 대전시도 적극적으로 이전 추진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청소년들의 의지가 어른들을 움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C형, 이제는 올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올해 못 이룬 것은 충청의 은근과 끈기로 새해엔 꼭 형통되길,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고대해 봅니다. 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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