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길 시인
박순길 시인
언젠가 TV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신동 가수가 색소폰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연주했다는 말에 공감이 되고, 내게도 고향에 대한 그리운 소리의 잔상이 떠오른다. 시골집 언덕배기에는 커다란 대밭이 있었다. 대밭은 빽빽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꺼번에 들이마시다 숨이 차면 한 번에 긴 숨을 내뱉는 소리가 해녀들이 숨찰 때 내뱉는 숨소리 같았다. 계속해서 불어오는 이 소리는 때로 무서웠다. 밤에 화장실 갈 때는 대밭을 쳐다보기도 두려운 댓바람 소리.

언덕배기에는 커다란 돌배나무 한 그루가 돌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서리가 올 무렵 돌배는 제법 맛이 들어있었다.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인 돌배나무에서 우는 소쩍새 소리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풍년이면 소쩍소쩍 울고, 흉년이면 솥이 비었다고 솥탱솥탱 하고 운다는 소쩍새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 했다. 긴 여운을 남기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쩍새 소리.

지금은 도로로 넓혀져 없어져 버린 동구 밖이 있었다. 놀이터인 이곳은 해질녘이면 언제나 친구들과 씨름을 하거나 비석치기, 딱지치기로 재미있게 놀았다. 딱지를 따서 친구들이 부러워하거나 딱지를 잃어서 화가 나 있을 때 하필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프라노 소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부를 때 바로 오지 않았다고 혼내는 엄마의 소프라노 소리.

할머니는 밭에서 김을 매거나, 밭가에서 깻단을 털 때 가끔은 옛날노래를 불렀다. 자세히 들어보면 가사도 곡도 혼자서 멋대로 작사, 작곡해서 부른 엉터리 노래였다. 곡이 변화가 없어 밋밋하거나 곡을 길게 늘여서 불러 시조 같기도 한 엉터리 할머니 노랫소리.

보리가 누렇게 익기 전 보리밭을 잘 살피면 꿩알을 줍는 횡재를 할 수가 있었다.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쪽을 바라보면 꿩 울음소리가 길게 메아리를 남겼다. 호주머니 안에는 입맛을 다시는 꿩알이 자랑스럽게 들어있어도 꿩이 우는 소리는 집에 올 때까지 따라다녔다. 나의 잘못을 꾸짖는 꿩의 울음소리.

그리운 소리는 고향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산소의 벌초할 때나 찾은 고향집에는 빈터만 남아 잡초가 우거져 있다. 그리운 소리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꿈에서나 그리는 유실의 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박순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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