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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대형가속기와 지역사회

2021-11-23 기사
편집 2021-11-23 15: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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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권영관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사업단장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 1년간 머무른 적이 있다. 중이온가속기 RIBF(Radioactive Ion Beam Factory)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열렸던 특별한 행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연구소가 인근 지역주민을 초청해서 가속기 시설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RIBF는 대규모 주거단지의 한복판에 있다. 시설을 알리는 표지판은 있지만, 높은 벽 너머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일반인들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속기 활용 연구의 취지를 알리고자 이런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일상과 별 관련도 없는 기초과학에 누가 그렇게 관심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연구시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진지하게 질문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우리 지역에 이런 대단한 연구시설이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면서 '과학문화' 개념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됐다. 과학문화란 과학을 수용하는 대중의 인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과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나, 문화적 수용의 토대가 없는 단순 연구개발만으로는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과학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과학은 과학자를 넘어 국민의 소중한 자산으로서 평범한 일상에도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계에 아주 기쁜 소식이 있었다.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발사이다. 물론 마지막 단계에서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많은 국민들이 사업에 참여한 연구자들 이상으로 가슴 졸이며 생중계를 지켜보고 또 환호했을 것이다. 특히 전라남도 고흥군 주민들은 우주로 향하는 전초기지가 그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발사 시설 인근의 학교를 다닌 한 초등학생이 꿈을 키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우주공학자로 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충청권에서는 두 개의 가속기 시설이 구축 중이다. 대전 신동지구에서 중이온가속기가 한창 구축 중이고, 충북 오창에서도 다목적방사광가속기의 구축에 착수했다. 두 시설 모두 예산 규모만 1조 원이 넘는다.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 대형가속기 시설 두 곳이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머지않아 충청권은 명실상부한 대형가속기 연구의 메카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대형가속기는 기초과학의 대표적 연구시설이지만, 산업 생태계 형성 및 고용 창출 등의 경제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과학을 존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문화적 자양분이 공급되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과학자들이 지역사회와 지식을 나누고 공통의 문화권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일본의 어느 연구소에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가속기로 만화에 나오는 헐크를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본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지금쯤 가속기로 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더불어 각 지역에서 구축 중인 대형가속기 시설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과학을 새롭게 마주하는 '인식의 창'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권영관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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