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딸이 너무도 갖고 싶었다. 딸과 아빠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럽고 행복해 보이던지 사실 딸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게 내 로망이었다. 지금은 아들만 셋이다. 누군가는 이왕 난 김에 딸 하나 더 낳으면 된다는데 그러다 아들 넷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아들이 셋 인건 다 이유가 있다. 딸이 없다는 게 여전히 아쉽긴 하지만 아들 셋도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다만 하나만 있으면 남부럽지 않게 입히고 먹일 텐데 셋이다 보니 그러질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형들 옷만 물려 입은 막내는 새 옷을 산적이 거의 없다. 아직은 어리니 주는 대로 입지만 나중에 머리가 트이면 지금보다 엄마와 더 싸우리라.

우리나라는 대개 예방보다 무슨 일이 터진 뒤 이를 뒷수습하는 사후정책이 대부분이다. 저출산 정책도 그렇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재정한 게 2006년인데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출산율 저하는 예고된 결과였다. 법 제정부터 현재까지 쏟아 부은 돈이 200조가 넘는다. 이정도 투자했으면 소국(小國) 정도는 만들 법 한데 출산율은 전혀 나아진 게 없다. 현금급여의 오남용 문제는 차치하고 그 돈을 차라리 신혼가구에게 나눠줬어도 지금 보다 출산율은 나아졌을 것 같다. 물론 시행된 정책들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출산율이 계속 하락한 것에 대해서는 다소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동안의 정책이 실효성이 없단 얘기다.

셋 정도 낳으니 정부의 출산율 정책의 폐해가 보인다. 이런 저런 구색은 갖추고 있는데 딱히 이거다 하는 건 없다. 중요한 건 전기요금 몇 푼 받자고 애를 낳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년 후에나 있을 법한 다자녀 대입전형의 혜택은 너무도 먼 훗날의 얘기다. 와 닿지도 않고 감흥도 없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혜택을 바라고 애를 낳는 것도 아니다. 기회비용을 따지면 무자녀가 이득인 세상이다. 살다보니 낳는 거다. 나중에야 미흡한 정부정책이 눈에 띄지만 이미 낳은 애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결혼을 앞두거나 자녀출산을 고민하는 예비부모의 현실적인 문제와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해소해주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0.84명으로 역대 최악이었던 작년 합계출산율이 올해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15세부터 49세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수가 합계출산율인데 사실 누가 중학교 2학년 때 아이를 낳는가? 실질적으로 애를 낳을 수 있는 20대 후반부터 보면 얘기가 달라지며 배우자가 있는 여성만 보면 출산율은 2명대다. 결혼을 하면 대개 아이를 낳는다는 소리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한 부부의 출산을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 정책의 무게중심을 젊은이들이 좀 더 쉽게 결혼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옮겨야 한다. 이미 자녀가 있는 가구에겐 아쉬운 소릴 수 있으나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결혼을 유도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나 기(旣) 자녀 가구를 위한 정책을 만드나 그게 그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이는 다르다. 저출산 정책의 핵심방향과 포커스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며 이에 따라 선택과 집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붓더라도 문제의 근본원인과 실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과거 대선에서 신혼가구에게 1억씩 나눠주자던 허경영의 공약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공약의 허무맹랑함이 아닌 오히려 그것이 설득력 있는 대안일 수 있음을 대중이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임진섭 교수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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