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교수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이승재 교수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바야흐로 대학입시 시즌이다. 필자도 며칠 전 수시 모집 전형 면접고사에 면접자로 참여했다.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은 교과 활동과 비교과 활동을 다양하게 평가해 학생의 숨은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백미다. 몇 해 전 면접고사에서 만난 한 학생이 생각이 난다. 그는 집이 매우 가난해 취업을 목적으로 일반계고가 아닌 특성화고에 진학했으며 도저히 건축을 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가 없어 대학에 진학해서 꼭 건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건축사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다. 그의 학생부 내용이 화려하지 않았음에도 한마디 한마디의 조심스런 그의 말에 건축에 대한 진심이 묻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꼭 뽑고 싶은 수험생이었다. 자신은 5년제 건축학 전공 과정보다 학비가 적게 드는 4년제 건축공학 전공 과정을 원한다면서 필자가 소속한 대학 입시에 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건축사가 되기 위한 자격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부터 건축사 수험 자격은 4년제 건축공학이 아닌 5년제의 건축학 인증을 받은 대학 졸업자에게만 주어졌다. 예전처럼 특성화고와 전문대학의 건축과를 졸업한 후 현장의 실무 경험이 쌓이면 주어졌던 건축사 수험 자격 자체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5년제 건축학 과정을 졸업하거나 건축전문대학원에서 2년을 수학한 후 또다시 3년의 실무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건축사 수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건축사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올해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5%라고 한다. 고품질의 건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5년제 건축학 과정일터인데 졸업자들의 합격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의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95%라 한다. 합격률이 높다고 해서 의사들이 수준이 낮다고 불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축전공의 교육과정을 길게 하고 건축사 자격시험의 합격률을 낮게 해야 고품격의 건축이 이뤄진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건축의 거장이며 아파트를 최초로 설계한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미술학교에서 시계장식을 배웠고, 일본의 건축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어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크 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는 트럭운전과 권투선수 출신이다. 공업계 고교를 졸업한 그는 정규 건축교육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전문적 건축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가 1997년 순혈주의로 유명한 동경대 건축학과 교수가 되었을 때 그 누구도 그의 교수 임용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들추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건축사 자격시험의 낮은 합격률이 득이 되는 그룹이 있을 것이다.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그들만의 논리로 사회를 주도해가는 그룹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성벽을 높여 젊음과 궁핍을 담보로 건축사의 꿈을 이루려는 청년들을 자신들의 성 아래 무릎 꿇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물어 본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의 강연에서 들은 얘기다. 미국에서 10만 부 밖에 팔리지 않은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2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정의롭지 못하기에 정의에 관심이 있다고 하고 혹은 정의에 관심이 많기에 그렇다고 얘기한다. 5년제 건축학을 졸업하지 못해도, 정규 건축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소수가 이루려는 건축의 꿈을 전문성 교육으로 포장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절차적 정의를 헤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 6596명이 응시해 330명이 합격하는 5%의 바늘구멍. 자랑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자문자답이 필요하다. 건축사는 설계능력과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의 건축시장은 우수한 건축 작품과 능력 있는 건축사를 구별해낼 자질이 충분히 있다. 아니 차고도 넘친다. 그러므로 시장이 판단하는 시장의 흐름에 믿고 맡기면 된다. 인위적으로 그 흐름을 막지 말자. 필자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열심히 건축 공부에 임했다. 4학년쯤 갑자기 찾아와 하는 말이 "교수님, 저는 건축설계가 맞지 않은 것 같아요" 한다. 그 후 그는 건설 현장에 취업해 오늘도 신나게 건설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한다. 이승재 교수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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