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부사 `펑펑`이나 동사 `쌓이다` 같은 단어가 `눈`과 붙어야 한다. "첫눈이 펑펑 내려 쌓였습니다." 첫눈이 첫눈 같아 보이는 문장이랄까. 아무튼 어제 보지 못한 진눈깨비 대신에 오늘 예상되는 폭설이 내게는 첫눈인 셈이다.
첫눈이 오면 계절이 크게 바뀐다.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애매할 때 눈 소식을 접하면 이제 겨울이구나 싶다. 망설였던 두꺼운 외투와 목폴라를 꺼내 입고 목도리와 장갑까지 챙긴다. 계절에 맞지 않은 옷매무새라고 눈길 받지 않아도 된다. 멋 내기용 코트를 하나 더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이리저리 헤매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두어 달 동안 추위를 막아줄 두툼한 외투 두어 벌만 있으면 된다.
가장 첫눈스런 때가 있다. 아침 출근 시간에 내릴 수도 있고, 한낮에 휘날릴 수도 있고, 어둑해진 저녁에 흩날릴 수도 있다. 모름지기 첫 눈은 모르게 내려야 제 맛이다. 모든 이가 잠든 한 밤중,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조용히 쌓이고 길고양이조차도 밟지 않은 아주 깨끗한 눈밭이 연출되어야 한다. 설사 새벽에 일찍 움직이는 아침형 인간 때문에 발자국이 남더라도 이내 덮일 수 있을 만큼 조용히 오래 내려야 한다. 그친 뒤에 보면 첫눈답지 않다. 왠지 황망하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결정적인 골 장면을 놓친 것 마냥 안타깝다. 놓친 골 장면은 친절하게 리와인드(rewind) 해준다. 하지만 내리는 눈은 되감기가 없다. 그래서 첫눈을 맞이하려면 행운이 필요하다.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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